[삶과 믿음] 어느 봄날의 e메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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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호 27면

지난 23일 대학 동기들이 연구소를 방문해 주었다. 졸업한 해가 1981년이었으니까 33년 만의 만남이었다. 간신히 알아본 그들의 얼굴들에서는 이공계(기계설계학과) 전공자로 산업 일선과 대학에서 우직하게 살아온 ‘베테랑’의 면모가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딴 길을 가서 공인이 된 나를 자랑스럽게 여겨주었지만, 나는 그들이 마냥 자랑스러웠다. 왜? 그들은 1980~90년대 대한민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에 기여한 1등 공신들이기에. 이공계 전사(戰士)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수출산업을 주도한 역군들 아니겠는가. 요령도 잔꾀도 통하지 않는 무대에서 오로지 실력으로만 성과를 올려야 했던 그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오히려 종교인인 나 자신이 순수한 물로 세안한 느낌을 얻었다.

이 은혜로운 만남은 연초 모교 동문회에서 느꼈던 감회를 상기시켜 주었다. 해마다 1월은 영적 칩거를 위해 외부 일정을 잡지 않는다. 그런데 동문회장으로부터 ‘한 말씀’ 요청이 집요하게 들어왔다. “대선배로부터 꼭 모시라는 엄명을 받았다. 못 모시면 내가 곤란해진다”는 으름장이었다. 계속 사양했다간 엉뚱한 사람 잡겠다 싶어 응했다. 이 모임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도약을 이끈 정·재계의 거물들을 얼른 알아볼 수 있었다. 나이 80을 훌쩍 넘긴 대선배들의 눈에선 여전히 수재 소년의 총기가 빛나고 있었다. 1등 애국자! 그들 앞에 섰을 때 내 뇌리를 스쳐갔던 단상이었다. 시대의 영웅들에게 드렸던 ‘한 말씀’은 한마디로 재롱이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고마움을 잊고 있었다. 오늘의 번영이 있기까지 무역의 전쟁터에서 전사를 방불케 하는 사명감으로 뛰어온 산업역군들!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 세대의 눈물겨운 헌신엔 대한 기억이 오늘의 풍요 속에서 매몰되고 있다.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현실이다.

그건 그렇고, 다시 그 반가운 날의 얘기를 마저 해보자. 그날 친구들이 내게 전한 감사패에는 쑥스러운 격려가 실려 있었다.

“가슴마다 성스러운 꿈을 품었던 시절, 태릉캠퍼스에서 동문수학하던 우리들 중에 조금은 다른 길로 가서 보다 더 넓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학우가 있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학우는 세상 속의 사람들, 사는 것의 외로움과 고단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는 등대처럼 우뚝 선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은 젊은 시절을 함께했던 우리들에게도 큰 보람이요 긍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우리 모두의 뜻을 모으고 정성을 담아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며칠 후 회장이 동기들에게 보낸 메일에 그날의 대화록이 소상하게 중계되었다.

“… 몇몇 동기를 빼고는 모두 차 신부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것이니까 그야말로 30년이 넘었죠. 반가움 속에 이름과 얼굴을 서로 확인했습니다. 이어진 식사 시간에 앞서 감사패와 디지털 앨범을 증정했습니다. 차 신부가 동기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식사를 하면서 시종일관 ‘희망, 희망 만들기’를 이야기했습니다….”

4시간에 걸친 달콤한 수다 기록에 덧붙은 한 친구의 시상이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있다.

“봄 구경은 언제가 좋을까. 활짝 핀 봄꽃을 보는 것보다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새싹을 봄이 더 좋지 않은가. 희망은 이처럼 새 힘을 솟게 하는가 보다.”



차동엽 가톨릭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무지개 원리』 『뿌리 깊은 희망』 등의 저서를 통해 희망의 가치와 의미를 전파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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