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베토벤 재능 고스란히 보여준 디아벨리 변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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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카를 체르니와 그의 제자였던 프란츠 리스트를 포함한 50명의 음악가에게 안톤 디아벨리가 자신의 왈츠곡을 주제로 한 변주곡을 의뢰했으니 이는 곧 19세기 초 음악도시 빈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을 총망라한 것이나 다름없다.

1824년 6월 디아벨리 출판사에서 출판한 변주곡 집은 총 2부로 나뉘어 있는데 제 1부는 베토벤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이며 제 2부는 나머지 50인에 의한 종합 변주곡 집이다. 당시 악보 출판계를 주름잡고 있던 디아벨리의 변주곡 작곡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작곡가는 드물었을 것이다.

당초에 작곡을 거부했던 베토벤은 이듬해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른 작곡가들의 것과 섞지 않고 출판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는 수용됐다. 건반악기를 위한 변주곡으로는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과 더불어 쌍벽으로 회자되기도 하지만 디아벨리 변주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과는 그 형식이 전혀 다르고 피아니스트들에게는 대단히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베토벤이 지닌 가장 탁월한 음악적 재능은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해내는 것보다는 주제가 되는 동기를 유기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방식과 더불어 작은 소재들 속에서 대곡의 요소를 빈틈 없이 채워내는 능력이다. 따라서 후기 베토벤 음악의 특징인 개인적 사색과 판타지를 디아벨리의 단조로운 주제 속에서 엮어낸 디아벨리 변주곡이야말로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겠다. 한편으로 이 곡은 아름다운 음악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그냥 듣기에는 괴로운 음악일 수도 있다.

33개의 변화무쌍한 변주곡을 듣노라면 듣는 이의 마음까지 갈팡질팡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이 곡은 클래식에 갓 입문한 이들에게는 권할만한 곡이 아니며 낯익은 곡명만 보고 덜컥 음반을 골랐다면 몇 년간 장식장 속에서 썩힐 수도 있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왜 이렇게 슬픈가요. 우리 사랑은 희생을 참고 서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야만 성립되는 건가요. 우리 마음이 늘 굳게 하나로 맺어져 있다면 굳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토요일이 되어야만 당신이 내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속상해서 눈물이 나려 하오. 당신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만은 못할 것이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고 있소. 내 불멸의 연인이여.”

베토벤이 남긴 일기 속 여인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프랑크푸르트에 살았던 ‘안토니아 브렌타노’라는 기혼녀가 그 주인공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굳어지고 있으니 그것은 베토벤의 일기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황과 더불어 그가 작곡한 디아벨리 변주곡이 1823년 6월에 별도로 출판돼 안토니아 브렌타노에게 헌정됐기 때문이다. 당초 작곡의뢰를 거부했던 베토벤이 디아벨리 변주곡을 작곡하려고 마음을 바꾼 것 또한 불멸의 연인 안토니아 브렌타노를 향한 사랑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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