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인사 성관계 동영상, 지난해 외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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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들에게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업자 강원도 문막 소재 별장. 건물 6동 외에도 정자·수영장·노래방 등을 갖추고 있다. 이 별장은 경매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원주=김형수 기자]

강원도 건설업자 A씨(53)가 고위 공직자 등을 상대로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경찰의 첩보 수집 및 내사 착수 공식화 과정, 성관계 동영상 존재 여부 등 갖가지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어서다.

 ◆청와대 내부 어떤 일 있었나

경찰은 지난달 초 이미 A씨 사건과 관련해 상당한 자료와 진술을 확보해 두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청이 18일 내사를 공식화하기 며칠 전 청와대에 내사 사실을 보고했다고 한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19일 “경찰청 수사 관계자가 직접 청와대에 들어가 A씨 관련 내사 사실을 알렸다”며 “당시 경찰청 수사 라인에서 A씨 사건이 미칠 파급력 등을 상세히 전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고위 공직자 검증 차원에서 관련 사안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내사 사실이 전해지자 청와대 내부에선 혼선이 빚어졌다고 한다. 앞서 경찰청 고위층 인사가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게 “내사 사실이 없다”고 설명한 뒤였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경찰 지휘부와 일선의 보고가 달랐던 것이다. 실제 또 다른 경찰 고위 간부도 당시 본지와의 통화에서 “(A씨 사건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고 답했다.

 청와대는 A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의혹이 있는 인사에게도 해명을 요청했다. 이 인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경찰 고위층의 설명과 본인 해명 등을 종합해 검증을 했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경찰은 왜 내사 착수 발표했나

A씨 사건 내사를 둘러싼 경찰청 지휘부와 일선의 보고가 엇갈린 것은 또 다른 파장으로 이어졌다. 경찰의 엇박자가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유임이 확실시되던 김기용 경찰청장이 전격 교체된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이 A씨 사건에 대한 내사 사실을 언론에 전격 발표한 것은 이 같은 청와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검경을 비롯한 사정당국과 청와대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진행 중인 이번 내사가 공식 수사로 전환될지 등 사건의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 동영상 있나

경찰은 A씨가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병원장, 금융계 고위 인사 등에게 성접대 외에 로비를 펼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 중 일부로부터 “고위 인사들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등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서울 서초경찰서에 성폭행 등의 혐의로 A씨를 고소한 여성 사업가 B씨는 A씨의 승용차 트렁크에서 이 동영상이 담긴 CD 7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B씨를 비롯해 성접대에 동원된 여성들이 해당 동영상을 봤다고 진술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동영상은 확인된 게 없다”고 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특정 인사가 나온다는 동영상이 존재하느냐보다 A씨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력 인사의 성접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 CD는 지난해 말 일부 외부로 유출됐지만, A씨가 이를 전량 회수했다고 한다.

 ◆서초서 성폭행 사건 왜 무혐의 됐나

A씨 성접대 의혹 사건의 발단은 B씨가 A씨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B씨는 당시 경찰에서 “A씨가 약물을 먹이고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A씨와 B씨의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A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선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최근 성접대 동영상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흘러나오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B씨는 최근 경찰에 동영상에 등장하는 유력 인사의 실명까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조사 왜 빨리 안 하나

경찰은 A씨에 대한 조사를 아직 하지 않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기법상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관련 진술과 증거를 먼저 확보한 뒤 A씨를 조사하는 게 맞다”며 “A씨가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경찰 수사망을 피해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이 이미 소재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핵심 관계자는 “A씨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현재로선 내사 단계이므로 조만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련자 소환 시작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9일 여성 사업가 B씨 등 성접대 의혹 사건의 핵심 관련자에 대해 소환 통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성접대 등 향응이나 금품을 받고 A씨의 건설 수주 과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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