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은 곧비평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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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불란서문단에「누보·로망」(새로운 경향의소설)의 물결을 번지게한「앙티·로망」(반소설)의 전위「미셸·뷔토르」(40)씨가 지난22일내한, 1ㅜ일간 체한중. 그는 작가로전향, 문제작「밀랑가」「시간의용도」「변모」「계층」을 발표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그는 24일 하오4시 신문회관에서「비평과 창작」이란 연제로 강연을가졌다. 여기 그의강연을소묘한다. <편집자주>
창작과비평은 서로 분리해서 생각할수없다. 창작이 하나의 비평인 동시에 비평이 하나의 창작인 것이다.
이미 우리는 많은 작품을 갖고있고 평생 읽을 책이 많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또다시 작품을 써야하나? 책이 많은걸보면 거북함과 속임수를 느끼게 한다.
새로운 책을 쓴다는건 과거작품이 충분치않고 불성실한 이유다. 즉 작품을 쓴다는건 과거의 비판인것이다. 부정적인면의 비평이기도 하지만 과거 작품속에있는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비평도 된다. 우리의 새로운 작품이란 과거 작품의 비판인동시에 현재의 비판 비평에대한 비평이다.
내가 생각했고 쓰려했던 것을 더욱 훌륭히 재주있게 말하는 비평가가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질수있는 비평은 나의 생각과 다른 것이며 무엇인가 다른 얘기를 해줄때다. 비평가도 작가와 마찬가지로 책에 의존치말고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이 상상력은 한작품이 전체냐? 전체의 부분이냐? 완성 혹은 미완성이냐는데 까지 이르러야한다. 그런데서 작가의 상상력은 전체를 생각해야하고 비평가도 언제나 이떤작품을 대할때라도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야한다.
보다 한걸음 비약하는것이 비평의 활동이며 미완성을 완성시키기위한 노력이 또한 비평의 활동분야이다.
비평가는 일부분을 보아서는 안되며 위대한 비평가는 전체를 보고 거기에 새로운 전체를 보고 거기에 새로운 이해를 덧붙여야 한다.
문학은 닫혀서는 안되고 읽혀지고 해방되어야한다.― 공중의 커다란 나무의 역할처럼. 작가는 자신을 비평가로, 비평가는 자신을 작가로 두고「창작과 비평」의 활동이 「미완성」 속에서 한걸음씩 세계를 개조해나간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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