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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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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

가족모임을 위한 식사 자리에서 늘 부닥치는 고민. 코스요리 3개 중 어떤 것을 고를지다. 선택은 대부분 중간 것이다. ‘5만·4만·3만원’짜리 레스토랑 메뉴건, ‘3만·2만·1만원’짜리 한식당 세트건 다르지 않다. 제일 비싼 건 부담스럽고, 가장 싼 건 빈약해 보인다. 그저 둘째가 무난하다. 음식은 중요하지 않다.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레스토랑 컨설턴트에 대한 기사도 같은 맥락이다. 가격을 매겨주는 컨설턴트는 최고가 코스의 값을 올릴 때 매출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안다. 최고가 요리를 시키는 사람은 드물어도 고객은 그 다음 가격대의 요리를 주문한다. 이 둘째 요리에서 많은 이윤이 남도록 메뉴를 조절한다.

 의사결정이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이처럼 다른 것과의 ‘비교’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경제학에서는 많이 연구된 사항이다. 미국 댄 애리얼리 교수의 설명을 보자.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은 정기구독 광고를 실었다. “① 온라인 구독=59달러 ② 오프라인=125달러 ③ 오프라인+온라인=125달러” 이 광고를 MIT 대학생에게 보여주니 ①보다 ③을 택한 사람이 많다. ②를 택한 사람은 당연히 없다. ②와 값은 같지만 혜택이 풍성한 것처럼 보이는 ③에 많은 사람이 끌린 것이다.

 한데 이 광고를 “ⓐ온라인 구독=59달러 ⓑ오프라인=125달러”로 바꿔 실험해 보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온라인 구독(ⓐ)을 택한 사람이 오프라인(ⓑ)보다 두 배나 많다. 결국 실제 광고에서는 미끼(②오프라인=125달러) 하나를 던지면서 오프라인 구독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만 봐도 우리를 움직이는 중요 동인은 상대성이다. 5만원짜리 펜을 사려다 1만원 할인하는 곳이 있다는 걸 알면 15분 거리는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70만원 하는 양복을 사려다 1만원을 아끼려고 비슷한 거리의 다른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지는 않는다. 똑같은 1만원인데도 말이다. 마트에서 300원 할인 쿠폰은 악착같이 챙기면서 레스토랑에서 3만원짜리 수프는 기꺼이 추가한다. 거실에 120만원짜리 가죽 소파를 들여놓는 것은 어렵지만, 같은 가격의 승용차 가죽시트 옵션은 쉽게 결정한다.

 1993년 미국에서는 CEO의 연봉 공개를 의무화한 뒤 오히려 연봉이 뛰었다. 서로의 연봉에 자극받은 CEO들이 경쟁적으로 혜택을 늘렸기 때문. 급기야 최근 유럽·미국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이유로 CEO 연봉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온다. 지난 3일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연봉규제법을 만들었다.

 ‘비교’를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는 상대성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이다. 그래도 우리를 종종 힘들게 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늘 남과 비교당하며,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백만장자는 억만장자가 부럽다. 오죽하면 사회비평가 멘켄은 “남자가 연봉에 만족할 때는 아내의 언니 남편보다 많이 벌 때”라고 했을까. 비교 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 그래서 내 가치와 희망대로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 아닐는지.

윤 창 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