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바둑·배 … 시진핑 외교 세 가지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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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회의 중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앞줄 왼쪽)와 리커창 상무부총리(앞줄 오른쪽)가 안건에 찬성하는 투표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번 회의에선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해 해양국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등의 정부 조직 개편안이 가결됐다. [베이징 로이터=뉴시스]

‘나무, 바둑, 그리고 배’.

 시진핑(習近平) 시대 첫해 중국 외교철학을 읽을 수 있는 세 가지 코드다. 양제츠 외교부장이 9일 전인대(全人大·국회 격)에서 열린 중국 외교정책과 대외관계 관련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양 부장은 17일 전인대가 끝나면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으로 승진이 예정돼 있다.

 주변국 외교정책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나무는 조용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慾靜而風不止)”며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북핵 문제와 일본과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황옌다오(黃巖島·스카보러 섬) 등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필리핀·베트남 등과의 분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양 부장은 “북한이 다시는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국제사회 반(反)핵실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제재는 근본적 방법이 아니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어릴 적 바둑을 배웠다. 그때 난 바둑을 잘 두려면 ▶큰 형세를 봐야 하고(看大局) ▶큰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看主流)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看長遠)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든 영토 분쟁이든 장기적이고 대국적 견지에서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외교원칙을 설명한 것이다.

 센카쿠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대화를 거론했다. 양 부장은 “댜오위다오 문제는 일본이 중국 영토를 비합법적 방법으로 도둑질하고 점거해 발생한 것인 만큼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태악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센카쿠 분쟁이 가열되자 군 강경파는 물론 시진핑 당 총서기까지 “전쟁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양 부장은 “같은 배를 타고 같이 바다를 건너야 하며(同舟共濟) 배에서 서로 밀쳐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21세기 국제관계는 다변화 체제여서 윈윈의 국제관계가 형성돼야 공정성과 실효성이 커진다는 분석과 함께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 대해 “케케묵은 낡은 관념을 버리고 중·미가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윈윈의 공동목표를 향해 가는 신(新)대국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인대를 통해 국가주석으로 선출될 시 총서기의 첫 해외 방문국은 러시아와 탄자니아·남아프리카공화국·콩고공화국 등 4개국으로 확정됐다고 양 부장은 밝혔다. 시 총서기는 이달 25∼27일 남아공에서 열리는 제5차 브릭스(BRICS) 정상회담에 참석할 계획이어서 첫 해외 순방은 이 시기를 전후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첫 기착지가 어느 나라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중국 언론의 분석이다.

최형규 특파원

◆2013 중국 외교정책 방향은

▶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나무는 조용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 북핵·센카쿠분쟁 등 현 외교상황 표현

▶ 看大局 看主流 看長遠 (간대국 간주류 간장원)

바둑 잘 두려면 큰 형세를 보고 흐름을 읽고 멀리 봐야

- 북핵이든 영토분쟁이든 멀리 보고 대화로 해결

▶ 同舟共濟 (동주공제)

같은 배를 타고 같이 바다를 건너야지 서로 밀쳐서는 안 돼

- 미국 등에 서로 이익 존중하는 윈윈 관계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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