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야당, 국회선진화법 안착시킬 책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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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선진화법은 국회 소수파를 위한 법이다. 해머에 전기톱·최루탄까지 등장했던 18대 국회가 “더 이상의 폭력은 정치권의 공멸”이란 자성(自省) 속에 다수파의 의안 단독 또는 강행 처리를 불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소수파에 거부권을 준 격이다. 지금으로선 민주통합당 등 야당이다. 대신 타협정신이 고양되길 기대했을 터다.

 선진화법의 위력은 최근 정부조직법 논의 과정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과반(152석) 정당이지만 강행 처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제발 몸싸움만 하지 말라”던 주문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됐다. 진전이다.

 그러나 타협정신 측면에선 실망스럽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모두 달라진 입법 환경을 의식하지 못한 채 대화보단 일방 주장을, 타협보단 강요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이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연이틀 “방송통신위의 공영방송(KBS) 이사추천 의결정족수를 현행 방통위원 과반수 찬성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강화하고 지난해 MBC 파업 사태를 다룰 국회청문회를 즉각 열며 김재철 MBC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김 사장의 사퇴를 여야가 촉구하자”고 한 게 그 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원안대로의 미래창조과학부를 고집하니 야당으로선 다른 데서라도 양보를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순 있다. 그래도 논의는 정부조직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옳다. KBS·MBC가 정부기관은 아니지 않은가. 더욱이 박 원내대표의 주장대로라면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를 의심하던 야당이 오히려 KBS·MBC에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나선 모양새이니 면구한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야당에서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겠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선진화법은 야당을 배려한 법이다. 제대로 안착시키는 게 야당에 이익이다. 여당의 개정 움직임도 저지할 수 있고 말이다. 야당은 이제라도 ‘타협’ 두 글자를 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