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명예의 전당 (27) - 칼 야스트렘스키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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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1일 열린 올스타전에서, 비록 아메리칸리그는 2 대 1로 패하였지만 야스트렘스키는 3안타를 뽑고 2개의 포볼을 얻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1루 코치로 나선 스탱키는, 야스트렘스키가 출루할 때마다 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레드삭스가 한창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던 8월 18일, 팀에 큰 악재가 등장하였다. 야스트렘스키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어 가던 외야수 토니 코닐리아로가 에인절스의 투수 잭 해밀턴의 빈볼성 투구에 얼굴을 맞고 부상을 당한 것이다. 레드삭스는 애슬레틱스에서 방출된 켄 해럴슨을 영입하여 타선을 보강하였지만, 아무래도 야스트렘스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레드삭스는 낙오되지 않았고, 야스트렘스키는 리더 역할을 계속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는 9월 초순 한때 슬럼프를 보였으나, 레드삭스가 오리올스에 3연패를 당한 뒤 다시 폭발하였다. 레드삭스는 시즌 종료를 앞두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볼티모어를 차례로 방문하였고, 야스트렘스키는 그 기간 동안 계속 놀라운 페이스를 보였다.

레드삭스는 볼티모어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홈에서 인디언스에게 2연패를 당하였고, 이어 시즌 마지막 두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절묘하게도 상대는 당시까지 91승 69패를 올려 레드삭스를 한 경기 차이로 제치고 단독선두에 올라 있던 트윈스였다. 더구나 트윈스에는 43홈런으로 야스트렘스키와 함께 이 부문 공동선두에 올라 있던 하먼 킬러브루가 속해 있었다. 보스턴 2연전에 전 미국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타이거스는 89승 69패를 거둔 상태에서 에인절스와 연속으로 더블헤더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던 화이트삭스가 탈락함으로써, 아메리칸리그 패권은 트윈스와 레드삭스, 타이거스 중 한 팀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9월 30일 벌어진 보스턴 2연전 첫 경기에서, 야스트렘스키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그는 팀이 2 대 1로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7회에, 짐 메리트를 상대로 결정적인 홈런을 날렸다. 킬러브루도 9회에 시즌 44호 홈런을 쳤지만, 경기는 레드삭스의 승리로 끝났고, 양팀은 공동선두가 되었다.

한편 타이거스는 이 날 1승 1패에 그쳤다. 따라서 타이거스가 10월 1일 더블헤더에서 모두 이기지 못하는 한, 남은 보스턴 경기의 승자가 리그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레드삭스의 우승뿐만 아니라 야스트렘스키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도 마지막 한 경기에서 실현 여부가 판가름나게 되었다. 야스트렘스키는 타율과 타점 부문에서는 여유있게 리그 선두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킬러브루가 남은 한 경기를 통하여 야스트렘스키를 홈런 랭킹에서 앞서지 못하는 한 트리플 크라우너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보스턴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해럴드 케이즈가 쓴 보스턴 글로브 칼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 우리에게 헤라클레스의 힘과, 다윗의 용기와. 페리클레스의 지혜를 주소서."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트윈스는 간단하게 선취점을 올렸고, 3회에는 야스트렘스키의 실책이 빌미가 되어 스코어가 2 대 0으로 벌어졌다. 보스턴 팬들의 꿈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6회말, 레드삭스가 만루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야스트렘스키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딘 챈스의 공을 받아쳐 안타를 날렸고, 스코어는 순식간에 동점이 되었다. 그리고 레드삭스는 계속 득점을 올렸고, 팬들의 함성도 계속 이어졌다. 이닝이 끝났을 때 레드삭스는 5 대 2로 앞서고 있었다.

8회에 트윈스는 연속된 두 개의 안타로 다시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이어 타석에 들어선 밥 앨러슨 역시 안타를 날렸고, 이 타구는 충분히 2루타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스트렘스키가 멋진 2루 송구로 앨러슨을 아웃시켰고, 트윈스는 결국 이 이닝에 한 점을 뽑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9회초, 투아웃 상황에서 트윈스의 리치 롤린스가 날린 타구는 외야플라이에 그쳤고 이로써 경기는 레드삭스의 승리로 끝났다. 팬들은 그라운드 내로 몰려들어와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였다. 펜웨이파크는 광란의 도가니였다.

그리고 야스트렘스키와 킬러브루가 모두 홈런을 추가하지 못함으로써, 이 부문 타이틀은 두 선수가 공유하게 되었다. 야스트렘스키가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326와 44홈런, 121타점이었다. 특히 시즌 마지막 두 주 동안의 야스트렘스키의 페이스는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5홈런과 .523의 타율, 그리고 16타점을 올렸다.

하지만 타이거스가 마지막 더블헤더 중 첫 경기를 이겨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레드삭스의 우승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타이거스가 남은 한 경기에서도 에인절스를 누른다면, 레드삭스는 타이거스와 플레이오프에서 대결해야 했다.

그러나 에인절스가 9회에 8 대 5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타이거스 2루수 딕 매콜리프가 병살타를 날림으로써 경기는 끝났다. 레드삭스의 리그 우승은 결국 실현되었다. 라디오로 타이거스 경기 중계를 듣고 있던 보스턴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즌 전, 도박사들은 레드삭스의 리그 우승 확률을 100 대 1 정도로 잡고 있었다. 실현 가능성이 1%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레드삭스의 우승이 야스트렘스키의 활약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스턴 팬들은 테드 윌리엄스의 은퇴 직후 자신들이 야스트렘스키에게 걸었던 기대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이 해에 드디어 깨달았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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