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한 호암아트홀…백건우 리사이틀 산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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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거의 매년 한 두번 고국 무대를 찾지만 식상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신선한 레퍼토리를 들고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

메시앙의'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4개의 시선', 베토벤 후기 소나타 연주, 라벨 전곡 연주, 강석희와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 국내 초연, 베토벤'합창교향곡'의 편곡판 연주 등 최근 몇년간 국내 무대에서 보여준 그의 작업은 충실하고 모범적이다.

외국 무대에선 아카데믹하고 어려운 레퍼토리를 연주하면서도 정작 고국 무대에선 대중 취향의 곡목을 고르는 연주자들과는 다르다.

지난 5~6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백건우 리사이틀은 그가 최근 데카 레이블로 선보인 포레 소품집 음반을 실연(實演) 으로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프랑스 살롱을 배경으로 탄생한 포레의 작품들은 개보수 이후 8백66석에서 6백40석으로 줄인 호암아트홀의 객석 규모에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재개관 이후 공식적인 첫 공연이라 음향 테스트를 겸한 뜻도 있겠지만, 포레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미지 않았다. 음반 홍보를 앞세운 음악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악회 프로그램 자체도 음반 수록곡과는 다른 논리와 설득력으로 만들어가는'작품'이다. 앙코르곡으로 포레의'로망스'외에 풀랑의 '무궁동'을 들려준 것도 '음반의 논리'보다 '음악회의 논리'에 비중을 둔 결과다.

프로그램 서두에서 연주한 쇼팽의 녹턴과 후반부에 등장한 포레의 녹턴을 비교해 볼 수 있었고,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필치로 그려낸 풍경화(리스트의'베네치아와 나폴리') 덕분에 활력과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리스트가 있었기에 포레가 더욱 다정한 목소리로 다가왔다.

이날 공연에서는 기존의 음향 반사판 외에 이동식 보조 반사판이 설치돼 눈길을 끌었다. 뉴욕 에버리 피셔홀에서도 독주회가 열릴 때면 병풍 같은 보조 반사판을 사용한다.

바닥과 내벽 마감재, 객석 의자 교체 이후 공연장 내부의 소음은 대폭 줄어들었지만, 무대와 객석의 시각적 거리에 비해 청각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고 잔향 시간이 짧은 것은 별 차이가 없었다.

다행히 기획공연의 시작을 3월 말로 미루고 조명.음향 반사판 교체 공사를 추가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좋은 결과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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