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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한국 기업인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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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고란
경제부문 기자

7500달러(약 820만원)가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모인 약 2000명은 5일(사전행사 포함) 동안의 지식 콘퍼런스를 선택했다. TED 콘퍼런스 얘기다. TED는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이 하나로 어우러진 세계 최대의 지식 콘서트다. 2년 전부터 본지는 TED의 공식 초청을 받았다.

 원래 TED는 폐쇄된 행사였다. 건축가이자 정보설계 디자이너인 리처드 솔 워먼이 기술과 오락·디자인의 융합을 꿈꾸며 1984년 만들었다. 이때 애플의 맥컴퓨터가 처음으로 선보였고, 관람객 중엔 젊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있었다.

 2001년 미디어 사업가인 크리스 앤더슨이 TED를 인수하면서 성격이 달라졌다. 앤더슨은 ‘퍼뜨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모토로 세우며 개방을 택했다. 2006년부터 인터넷에 무료로 강연을 공개했다. 늦어도 한 달만 기다리면 대부분의 강연은 인터넷에 올라온다.

 강연만 듣겠다면 왜, 7500달러를 내고 일주일의 시간을 들여 TED를 선택할까. 롱비치에 와서야 알았다. 7500달러는 강연이 아니라 참가자 간의 네트워크에 지불하는 가치였다. 내로라하는 CEO는 널렸고, MIT 출신은 부지기수다. 옆자리에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가 앉을 수 있고, 점심식사 자리에선 앨 고어 전 미 부통령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이름만 알고 지내는 ‘느슨한 관계’가 친하게 알고 지내는 ‘밀접한 관계’보다 정보를 얻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TED에서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의 가치는 7500달러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 기업인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단 두 명을 만났을 뿐이다. 그사이 직접 만난 일본 기업인들만 10명을 훌쩍 넘겼다. 국내 시장만을 타깃으로 해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최고급 인재가 모이는 TED 같은 곳에서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 내년 TED에선 좀 더 많은 한국 기업인들을 마주치길 바란다. 롱비치에서

고란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