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용사회 뒤흔든 농협카드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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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국 농협 지역조합의 현금카드 비밀번호가 새어나가 카드 1천1백만장을 전면 교체키로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농협 측은 정보의 대량 유출은 없었다고 강변하지만, 사건 초기에 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쉬쉬하다가 사태를 키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농협의 이번 사고는 보안에 취약한 초기 카드 모델을 10년씩이나 방치해온 데 있다. 신용카드를 비롯한 각종 카드는 그동안 용도가 다양화되고 보안기능도 강화돼 왔다. 제대로 금융장사를 하려면 이런 투자를 당연히 해야 하는데 농협이 이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신용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보안 의식이나 시스템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신용카드와 인터넷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개인 정보의 중요성은 훨씬 커졌다. 홈쇼핑 등 일반 상거래는 기본이고 거액의 주식 매매.송금 등 대부분의 금융거래도 '번호' 한두 개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가맹점.금융기관 관계자들의 보안 불감증으로 카드 불법복제나 해킹 등의 사건은 연일 터지고 있다. 개인 정보가 대규모로 매매되고 이동전화 가입자의 정보가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관계자는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다. 농협 사건 역시 이런 보안 불감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사건이 터진 만큼 농협 측은 피해를 최소화하고 사건의 원인을 빨리 가려야 할 것이다. 농협 측은 이번 사태가 금융기관으로서의 신뢰와 신용사회 정착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하다는 점을 인식, 고객의 불편을 줄이면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금융 당국도 이번 사태의 원인과 과정을 철저히 밝혀, 책임을 물을 부분은 묻고 보완해야 할 부분은 고쳐야 한다.

아울러 우체국이나 신협, 새마을금고나 일부 은행에 문제의 현금카드와 비슷한 수준의 카드가 수천만장이나 있다고 하니 속히 교체하는 등의 후속.보완 조치가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