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닥섬유로 그림 그린 서양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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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옆에 선 김정환 작가.

“닥섬유는 이질적인 것들을 함께 품어 안는 어머니 같은 소재지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생성과 소멸, 무한성과 유한성을 포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까지 담고 있어요.”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앞 ‘공유’ 갤러리에서 ‘자연의 시간’ 전시회을 열고 있는 김정환(51) 작가가 ‘닥섬유 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에는 닥종이로 꾸민 꽃과 나무·정원 등 30여 점이 나와 있다.

 작가는 전통적 회화도구인 캔버스·붓·물감을 버리고 한지 원료인 닥나무에서 채취한 섬유와 손·안료를 이용해 작품을 빚었다고 밝혔다. 먼저 캐스팅 기법을 이용해 다양한 질감의 닥섬유 형상을 뜨고, 이를 뜯어낸 뒤 다시 뒤집어 붙여 다양한 형상과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정원의 꽃과 나무·나비·벌 등 조형물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상이 돋보인다. 또 깊은 손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촉각적인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자연의 사계절이 천천히 돌아가는 것처럼 ‘유유자적한 삶’과 ‘느림의 미학’을 한껏 음미할 수 있다. 작품에는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매화나무에 비 개니 새순 돋고’ ‘꽃밭에 김을 매고 저물녘에 돌아오다’ 등 시적인 제목이 붙어 있다. 이들은 옛 문인들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왔다.

  홍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서양의 전통적 예술관에 대한 맹목적 복종에서 탈피해 한국적 정서를 포용할 수 있는 매체가 무엇일까 찾아 헤맨 끝에 닥섬유를 만나 20여 년간 한 우물을 파왔다” 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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