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님만 몰라요, 회사 망하는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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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위쪽부터 리처드 풀드, 마틴 설리번, 존 코자인.

‘나쁜 최고경영자(Rogue CEO)’란 말이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 유행했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리처드 풀드, 보험회사 AIG의 마틴 설리번, 투자회사 MF글로벌의 존 코자인 같은 CEO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무모한 베팅을 했다가 회사뿐 아니라 나라 경제를 망가뜨렸다. 나쁜 CEO론을 주장한 전문가들은 이제껏 “문제의 CEO들은 본연의 개인적 성향 때문에 무모한 일을 저지른다”고 주로 분석해 왔다. 대다수의 보통 CEO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모험이란 게 CEO들의 일반적 속성’이란 내용이다. 미국 브리검영대학 캐티 릴젠퀴스트 교수(경영학) 등이 실험사회심리학회지(JESP)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서다. 릴젠퀴스트 교수는 ‘무모한 리더십:권력이 제약 요소 인식을 떨어뜨린다(The blind leading: Power reduces awareness of constraints)’는 논문에서 “기업에서 권한을 많이 쥐게 될수록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위험 요인들을 알아채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고위직에 앉으면 리스크에 둔감해진다는 얘기다.

 릴젠퀴스트 교수 등 연구진은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고위직과 하위직 모두 230명에게 경영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요소와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각각 보여줬다. 모두 18개 항목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연구자들은 두 그룹에 양쪽 내용들을 떠올려 보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CEO 등 고위직일수록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위험 요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반면 하위직은 이를 잘 떠올렸다. 또 하위직은 위험 요인들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릴젠퀴스트 교수는 “CEO 등은 리스크 요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신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요인들을 더 잘 기억했고, 이들 요소를 중시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성향을 보였다.

 이번 연구 결과를 놓고 보면 “기존의 나쁜 CEO론은 과학적이지 못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지적했다. CEO라는 자리가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일반론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CEO들이 목표 달성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성향은 강해질 듯하다. 게다가 목표 달성은 CEO들의 보수와 직결된다.

 대안은 무엇일까. 연구자들은 주주들의 대변기구인 이사회가 CEO 주변에 리스크에 민감하고 이를 경고할 인물들을 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풀드·설리번·코자인 등은 이사회를 움직여 그런 인물들을 내쳤다. 결국 CEO와 이사회 간의 권력 균형이 관건인 셈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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