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NLL 양보 발언이 사실이었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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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양보성’ 발언을 한 게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대해 어제 무혐의 결정을 했다. 유사한 주장을 한 이철우 새누리당 대변인 등에 대해서도 같은 처분을 했다. 검찰은 국정원에 보관됐던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보고 이 같은 판단을 했다.

 이제라도 우리가 요구해 왔던 대로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여부가 규명돼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다. 국가 정상이 영토 수호란 헌법상 제1 책무를 망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외교, 특히 정상외교는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현 대통령의 발언이나 약속이 차기 대통령에게도 구속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노 전 대통령의 국익에 반하는 발언이 지속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북한은 그 이후 “남측이 불법적인 NLL을 유지하려는 건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다.

 차기 대통령들은 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국내 정치에서의 실수는 바로잡을 기회가 있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새기고 외교적 발언엔 극히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국가 정상 간 회담 기록이 공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국내 정쟁 때문에 회담 기록이 바로바로 공개된다면 어느 정상이 우리 대통령과 깊은 대화를 하려 하겠는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대통령이 빌미를 주는 어리석은 언행도, 정치권이 외교 문제를 과도하게 정쟁화하는 일도 없어야겠다.

 그나마 이번 논란을 거치며 여야 모두 “NLL이 사실상 해양 경계선”이라고 공언하게 된 게 망외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남북 간엔 NLL이 여전히 ‘뜨거운 감자’지만 적어도 국내에선 의견 일치를 봤다. “회의록에 염려할 게 없다”고 부인해 왔던 민주통합당이지만 NLL을 지키겠다는 다짐은 진심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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