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승리의 여신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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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번엔 얼굴 없는 작품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간판 여신 중 하나인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Winged Victory of Samothrace)’, 줄여서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다. 박물관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드농관의 층계참 위에서, 얼굴이 있었다면 아마도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매일 구름떼같이 몰려드는 관객을 내려다봤을 여신이다.

 1863년 터키 아드리아노플의 프랑스 부총독 샤를 샹프와조는 에게해 북서부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이 거대한 조각의 파편 100여 점을 발굴했다. 머리와 팔도 없었다. 한쪽 손은 1950년 무렵에야 발견됐다. 여신상은 원래 돌전함의 뱃머리 부근에 서서 신전을 내려다보는 곳에 있었다. 뱃머리에 내려서려고 큰 날개를 활짝 폈을 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 얼마간 공중에 떠 있었을 그 순간을 묘사했다.

 머리도 없는 데다가 뒤늦게 발견된 손은 어떤 상징물도 쥐고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미술사가들은 니케상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조각이 출토된 지역에서 나온 도기들은 이곳이 에게해 동남쪽의 섬, 로도스와 연관돼 있음을 암시한다. 로도스의 마지막 해전이 기원전 190년 무렵, 로도스인들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니케상을 만들었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해서 이 여신상은 미술사에 ‘헬레니즘 조각의 절정’으로 기록됐다.

날개를 단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측면), 높이 328㎝, BC 2~3세기. [사진 루브르박물관]

 니케상은 결핍이 완벽을 이끌어 낸 역설적 사례다. 보는 이들은 여신상의 저 얼굴 없는 허공에 저마다의 상상 속 미인을 두는지도 모른다. 얼굴에만 집중됐을 시선은 여신의 활짝 편 날개, 몸의 윤곽을 드러내며 절묘하게 흐르는 옷주름을 타고 내려간다. 그리하여 3m 넘는 조각상은 그 자체로 균형미가 넘치는 명작이 됐다. 감동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박물관에 들어서는 초입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여신의 드라마틱한 등장 또한 여기 일조한다. 과거에 궁전이었던 이 박물관의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이걸 후광처럼 등지고 선 승리의 여신상이 보여주는 위용이야말로 박물관 디스플레이의 승리다.

 루브르는 지난달 여신상의 보수 계획을 밝혔다. 오는 9월부터 1년 남짓한 일정이다. 대리석의 색상 회복을 위한 여신의 ‘목욕’, 1934년 보수 때 풀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 드는 예산은 300만 유로(약 43억원). 하나 여신에겐 국제적 후원자들도 많다. 니혼TV를 중심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이 지원한다. 니혼TV는 2010년 모나리자의 방, 밀로의 비너스 보수에도 참여했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