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개혁 성공 조급증 버렸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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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좀 주제 넘은 발언을 하자면, 나는 지금 노무현(盧武鉉)당선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만하다. 그가 당선되기까지의 역정을 살펴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盧당선자는 예전에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고 했다.

정당에서 계보(系譜)를 거느린 것도 아니고 자금력도 없으며 학벌도 취약한 자신이 무슨 재주로 여당의 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권 도전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정치적 입지를 마련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는 차원에서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실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과정을 돌이켜보면 종착점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 한 순간이 극적이었다. 어쩌면 그의 당선은 여러 사람들의 지적처럼 '하늘이 작심(作心)하여 이뤄낸 결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본론을 말하려 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쳤기에 盧당선자가 더욱 더 '욕망'에 불타고 있을 법하다는 얘기다. 필자가 우려하고 있는 그의 욕망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 땅의 잘못된 것들을 재임 5년 동안 몽땅 다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다.

盧당선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욕망'이다. 그의 '욕망'을 운운한다고 해서 그의 개혁노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분명히 해두지만, 나는 당선자의 개혁노선에 대체로 공감하는 입장이다.

부(富)의 분배만 보더라도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불균형의 연속이었다. 상위 10%의 국민소득이 하위의 그것보다 아홉배가 넘게 된 것은 탄식할 일이다. 경제성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심각한 분배의 불균형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마음이 다급해진다면 원칙과 법의 범주를 벗어나기 쉬우며, 오히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의 상속에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겠다며 상속.증여 포괄주의란 것을 들고 나온 것, 집단소송제의 강행을 천명하고 나선 일 등은 이런 맥락에서 현명한 선택은 아닌 듯싶다. 망치로 두드려 놋그릇을 만들듯 개혁을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다면 정치란 게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盧당선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경구 하나가 있다. "민주주의는 그 실현과정이 매우 번잡스럽기에 긴 노정(路程)을 필요로 하며 우리는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하고 늘 그 길에 바싹 붙어 있어야 한다."

윈스턴 처칠의 '아포리즘'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잠언이 될 듯싶다.

이야기를 다소 비약한다면, 얼마전 盧당선자가 공정거래위의 언론사 과징금 부과 취소문제와 관련해 인수위가 양해했다는 것에 격노했다는 소식은 상쾌한 것이 못 된다. 사건의 전말을 따지기에 앞서 그의 '과속 이미지'가 다시 한번 도드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TV토론에서 그가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던 일도 그렇다. 백악관까지 나서서 이를 부인하는 소동이 발생한 것은 '해석'을 잘못한 외국 통신사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발언에 대해서는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것도 당선자의 덕목일 것이다.

김덕중 <한국산업문화연 소장.경원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