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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퇴출, 이젠 놀라지도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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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홍상지
경제부문 기자

“허두(하도) 데어서 놀랩지두(놀랍지도) 않아.” 지난 주말 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간 전 서울저축은행의 고객 김순옥(83·서울 신천동)씨의 말이다. 김씨는 서울저축은행이 ‘예주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을 달고 영업을 개시한 어제 은행 본점을 찾았다. 그리고 덤덤하게 ‘서울’에서 ‘예주’로 바뀐 통장을 챙겨 은행 문을 나섰다. 그는 “저축은행이 망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5000만원만 안 넘으면 돌려주는 거 누구나 다 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15일 서울저축은행과 영남저축은행을 퇴출시켰다. 예상 밖의 결과는 아니었다. 두 곳 모두 지난해 말 경영개선명령을 받았지만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정을 몰랐던 저축은행 고객들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날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대부분 재작년 저축은행 사태의 혼란을 직접 겪은 70·80대 노인들이었다. 그때 겪었던 혼란이 이들에게는 ‘학습효과’가 된 셈이다. 영업정지 여부를 예상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70대 노인은 “그건 몰라도 저축은행 맛 간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고 되물었다.

 이날 예주저축은행이 오전 9시에 영업을 시작한 이후 두 시간 동안의 거래 건수는 지점 및 인터넷 거래 포함해 179건이었다. 대부분 적금을 만기 해지한 고객이었고 중도해지 고객은 16명에 불과했다. 학습효과를 거둔 건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저축은행들은 영업정지 결정이 나기 전부터 이미 관련 TF팀을 구성해 꾸준히 대비해 왔다. 이들은 경영개선명령이 떨어졌을 때부터 5000만원 초과 예금 고객과 후순위 채권자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다. 은행 관계자는 “첫날 혼란이 클 줄 알고 청원경찰까지 따로 고용했는데 생각보다 조용하다”고 전했다.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씁쓸하다. 퇴출 학습효과는 이제 충분하다. 다음 차례는 저축은행이 본연의 역할인 서민금융회사로 나설 수 있도록 금융당국과 함께 방향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제는 퇴출에도 놀라지 않는 가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저축은행 학습효과’로 놀라게 하는 일만 남았다.

홍상지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