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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답지 않은 청문회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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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정치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강점 중 하나는 예측 가능한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예전엔 저렇게 얘기했다가 이번엔 이렇게 말 바꾸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박 당선인을 오래 취재하다 보면 ‘이런 상황이면 이런 얘기를 하겠구나’라고 짐작이 가능한데 대개 틀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가끔씩 예상이 빗나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발언을 내놓아 깜짝 놀란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그가 지난해 대선 전날 밤 광화문 유세에서 “임기 내에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을 때다. 그는 2006년 노무현 정부가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를 검토하자 “현실적으로 그런 안보상황인가 생각해봐야 한다”며 반대한 적이 있다. 그가 현 안보 상황이 2006년보다 크게 호전됐다고 본 것일까? 글쎄, 오히려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판세를 역전시켰다는 루머가 급속히 퍼지던 상황이라 ‘선거용 승부수’를 던졌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한 표가 아쉬운 대선 판이니 이해는 간다. 문 후보도 똑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럼에도 ‘쫓기듯 나온 박근혜답지 않은 발언’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지난달 30일 박 당선인이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현재의 국회 인사청문회 방식과 관련, “후보자에 대해 너무 공격적이고 마치 죄가 있는 사람처럼 대한다”며 불만을 표시했을 때다. 전날 밤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전격적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였다. 솔직히 박 당선인의 스타일상 총리 인사 실패에 대해선 당분간 함구하거나, 설령 말을 해도 의원들에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는 식이 될 줄 알았다. 아무리 비공개 모임이었다고 해도 그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왜냐하면 현 청문회 제도가 도입되는 데 박 당선인이 깊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2005년 3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여 물러나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곧바로 한나라당은 유정복 제1정조위원장의 대표 발의로 이런 내용의 국회법개정안을 발의해 그해 7월 통과시켰다. 현 청문회 관행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분명히 경청할 대목이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내놓은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다음날 그런 얘기를 하면 “불리하다고 말 바꾼다”는 지적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까. 박 당선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새누리당은 허겁지겁 인사청문회 개선을 위한 TF를 구성하겠다고 나왔지만 민주당이 응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총리 인사 실패는 박 당선인이 정치 입문 후 겪은 가장 큰 정치적 수모다. 심리적 동요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급할수록 원칙에 충실하라는 건 평소 박 당선인이 자주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청문회 통과에 결격 사유가 없는 총리·장관 후보감을 찾는 게 원칙이다. 청문회 개선 요구는 정부 출범 후 해도 늦지 않다. 이제 와서 청문회가 ‘신상털기’라고 비판하는 건 박근혜답지도 않고 아무 실효도 없다.

김 정 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