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과 거절의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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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직 독신생활을 하고있으니 만나는 친지들마다『국수는 언제쯤 먹게 되느냐』고 성화다.
난 곧잘 지금 밀가루 반죽을 하고있는 중이라고 웃겨주곤 하지만 좀더 허물없는 사이 같으면『중매는 않으면서 국수 먹을 욕심만 부리느냐』고 악의 없는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후 한 친구로부터 좋은 규수를 소개받아 이른바 맞선을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수일 후에 전해온 말에 의하면 나하곤 궁합이 맞지 않는단다.
○…이런 사연이 내 주위에 퍼지고 난 얼마 후, 또 한 친구로부터 궁합을 따지지 않겠다는 아가씨가 있으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시원한 아가씨도 있다 싶어 즐겨 만나 봤지만, 이번엔 그 케케묵은 궁합을 들추어낸 건 상대방이 아니라 내 자신이 되고 말았다.
나도 이때야 비로소 먼젓번 아가씨 말의 진의를 깨닫고 고소를 지었다. 사실 궁합이란 길흉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거절의 수단으로서 사용돼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문혁·서울시 이태원동 63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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