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한국경제 변수 주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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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한국 경제는 6% 성장했다. 비록 외환위기 이전 고속성장의 황금시대나 극적으로 경제위기에서 탈출했던 1999~2000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국을 제외하고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과시한 셈이다. 통화.재정정책으로 경기(景氣)를 띄운 덕분에 내수(內需)가 탄력을 받은 데다 세계 경제가 기력을 회복하면서 한국 수출도 나아져 수요가 살아난 덕분이다. 공급측면에서도 생산성이 뒤를 받쳐줘 인플레이션 압력이 미미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올해 경제 전망은 지난해만큼 밝지 않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었던 소비 수요와 가계대출 부문에서 어느 정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통화.재정정책으로 지난해만큼의 경기 부양 기조를 유지하기도 버거워 보인다.

특히 다음 세 가지 외부변수로 인해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뚝 떨어질 우려가 있다.

첫째는 북한 핵(核)위기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군사적인 행동이 필요해지면 이는 명백히 한국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 北核 군사적 행동은 희박

북핵과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국이 지지하고 있는, 외교적인 해결방안이 결국 도출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말썽꾸러기로서의 자질을 다시 발휘할 경우 외교적인 해결이 지연될 수 있고 이는 한국의 소비.투자심리를 썰렁하게 만들 수 있다.

북핵 위기가 소비.투자심리를 얼마나 얼어붙게 할지 또한 핵 위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분석하기 어렵다.

둘째, 유가(油價)다. 한국은 세계 주요국들 중 원유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 이라크전쟁 가능성과 베네수엘라 파업으로 유가는 평상시보다 배럴당 8~10달러씩 더 올라있는 상태다.

치솟은 유가 때문에 한국은 GDP의 2%만큼을 에너지 수입비용으로 더 지불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이 터져 세계 유가가 더 급등하면 이같은 추가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셋째는 세계 경제의 회복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1년 전만 해도 순조로울 것 같았던 세계 경제가 최근에는 추진력을 확실히 잃어버렸다.

미 연준이 이미 금리를 내린 데다 앞으로 재정 투입을 더 늘릴 가능성이 있어 미국 경제의 '약한 고리(soft spot)'는 끊어지지 않은 채 단기에 봉합될 수도 있다. 미국 기업의 순익이나 투자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에서 수요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비싼 유가와 이라크.북한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세계 경제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이러한 주변환경 탓에 올해 아시아 신흥시장 국가들의 살림살이는 지난해보다 더 빡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낙관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한국의 단기적인 경제 전망을 암울하게 만드는 이런 걱정거리들이 단명(短命)에 그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책임있게 행동하고 국익(國益)을 좇는 실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북핵 위기는 외교적으로 조속히 해결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거나 전쟁이 일어나도 이른 시일 안에 종결되면 세계 유가는 급락할 것이다. 원유가가 떨어지고 유럽과 일본이 보다 정력적으로 경기부양책을 펼쳐주면 세계 경제는 올 하반기 중 회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위해 과연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내적으로 통화.재정정책은 내수 성장을 적절하게 이끌기 위해 부양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다만 대외적 경제환경이 껄끄러운 만큼 부양책을 어느 정도까지 신중하게 쓸지, 그리고 그 효과는 어떠할지 등 그 한계는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 통화·재정 부양기조 유지를

사실 유가와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회복 속도에 관한 한 한국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 핵은 이와 대조적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중심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역할은 현 위기를 외교적으로 조속히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 뿐만 아니라 향후 유사한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정리=서경호 기자

◇약력=미 시카고대 교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실장 및 경제자문, 현재 워싱턴 소재 국제경제연구원(IIE)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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