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감동 터치, '스트레이트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미국 감독 데이비드 린치(55) 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오는 30일) 와 '스트레이트 스토리'(다음달 1일) 가 하루 차이를 두고 극장에 걸린다.

데뷔작 '이레이저헤드'를 비롯해 '광란의 사랑''트윈픽스'등 때문에 그는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일종의 컬트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외견상 견고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의 황폐한 내부, 겉으론 멀쩡한 인간들의 내면에 도사린 포악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에 개봉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도 그의 이런 고집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형제간의 화해라는 소박한 주제를, 별다른 기교없이 담담하면서도 다소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여줘 대조적이다.

*** 스트레이트 스토리


영화는 별들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같은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특별히 발광이 강한 별도, 약한 별도 없이 무수히 늘어선 점별들. 이런 장면은 은유적으로 볼 때 새로운 건 아니다.

우주 속의 먼지 같은 인생이라는 진부한 비유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영화도 이런 속화된 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말이지 무엇이 중요한 지를 알게 돼. 젊을 때 아등바등 집착했던 것들이 부질없어 지지'.

주인공 앨빈 스트레이트(리처드 팬스워드) 는 일흔 세살로 시력도 가물가물해지고 몸도 병든 상태. 언어장애가 있는 딸(시시 스페이섹) 과 함께 살아가는 그에게 형이 쓰러졌다는 전갈이 온다.

10여년 전 사소한 다툼으로 등을 돌린 뒤 소원한 관계로 남아있던 형.스트레이트는 불현듯 형을 만나야 한다는 느낌에 강하게 끌린다.

하지만 차도 없고, 오하이오주에서 위스콘신주를 잇는 대중교통도 마땅치 않자 그가 택한 운송 수단은 잔디깎는 트랙터. 여기에 먹고 입을 것을 담을 짐칸까지 만들어 뒤에 달고서 자전거보다 더 더딘 속도로 터덜터덜 달린다.

때때로 시동이 꺼지고 브레이크도 듣지 않는 연약한 엔진에 의지하면서 집채만한 짐칸까지 뒤에 단 채 달리는 그의 모습은 바로 인생살이의 이미지적인 변용이다. 주어진 능력은 변변찮은데 어깨를 누르는 짐은 너무 벅차, 버겁고 힘겹게 이어가는 게 우리네 삶 아니던가.

영화는 중간중간 드넓은 옥수수밭과 먹구름 낀 하늘을 오버랩시켜 반복해서 보여준다. 삶이란 밝고 어두운 것,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일이라는 걸 증거하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6주간을 달려 만난 형.말 없이 부둥켜 안으며 단 두마디 대사만 허용함으로써 절제있게 클라이맥스를 처리하는 건 리치감독답다.

그러나 주인공이 가출한 젊은 여성에게 가녀린 나뭇가지도 여러 개가 합쳐지면 부러지기 어렵다는 예화를 들며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장면은, 제도의 냄새가 강해 반(反) 리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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