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아파트서 또 굴뚝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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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비 업무 용역 전환에 반대하며 단지 내 굴뚝에서 농성을 벌이던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경비원 한모씨가 농성을 풀고 내려오고 있다. 한씨는 이날 새벽 4시30분부터 10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용역전환을 추진하던 아파트 대표자회의 측은 ‘계획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김도훈 기자]

서울시에서 손꼽히는 조용한 주거지역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가 요즘 시끌시끌하다. 경비원의 잇따른 굴뚝 농성 탓이다.

 29일 서울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에서 아파트 경비원의 굴뚝 농성이 벌어졌다. 지난달 바로 옆 단지인 신현대아파트의 경비원이 굴뚝 농성을 벌인 지 한 달 만이다. 이날 굴뚝에 올라간 경비원은 한모(62)씨. 그는 오전 4시30분 단지 안에 있는 60m 높이의 용도 폐기된 굴뚝에 올라 농성을 벌이다 이날 오후 2시30분쯤 굴뚝을 내려왔다. 관리사무소 측이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요구 사항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31일엔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민모씨가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다. 해고된 경비원 14명 중 복직을 원하는 7명 전원이 일자리를 되찾는 것으로 당시 굴뚝 농성은 마무리됐다.

 이번에 한씨가 굴뚝 농성을 벌인 이유도 고용 문제였다. 한씨는 “아파트 대표자회의에서 경비 인력을 용역업체에 맡기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을 듣고 항의하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고 말했다. 그동안 구현대아파트 경비원은 아파트관리소에서 직접 고용하는 형태였다.

 또 입주자대표회의가 올해부터 경비원 휴식시간을 2시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한 것도 계기가 됐다. 그동안 경비원은 격일제로 24시간 근무하며 21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취해지면 19시간만 인정받아 월급이 줄게 된다. 이 아파트의 다른 경비원은 “현대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경비원은 밤낮으로 차량 주차에 시달린다”며 “휴게시간이라고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정모(69)씨는 “새벽에는 경비원 대부분 수면을 취한다”며 “근무시간을 현실화해 관리비를 절감하려 했다”고 말했다.

 흔한 노사갈등이다. 그런데 왜 대화가 아닌 굴뚝에 오른 걸까.

한씨는 “지난번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을 따라 한 게 아니다”라며 “아무도 농성을 말릴 수 없는 곳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굴뚝에 올랐던 민씨는 “쌍용자동차 굴뚝 농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억울해 굴뚝에 올라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솔직히 혼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그때 민주노총 관계자가 ‘같이 굴뚝에 올라가주겠다’고 연락해와 민주노총 관계자 5명과 함께 굴뚝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번 구현대아파트 굴뚝 시위엔 민주노총이 아니라 한국노총이 관련됐다. 한씨는 “농성은 누가 지시한 게 아니라 순전히 내 계획”이라면서도 “농성 전날 한국노총 서울지부와 한국노총 산하 전국아파트노동조합연맹에 계획을 알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씨가 이날 새벽 농성을 시작하자 한국노총 관계자가 찾아와 농성용 조끼와 깃발 등 장비를 지원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노동단체가 이슈를 만들기 위해 조직적으로 굴뚝 농성을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노사 간에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당사자를 꼬드겨 크게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글=유성운·조한대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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