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고 부드럽고 자유롭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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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17일 노사(勞使)문제에 관해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주한 미국.유럽 기업인 초청 간담회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해고를 부드럽고 자유롭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사문제는 법과 원칙에 맞게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외 기업인 사이에서 盧정부의 노사정책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제 5단체에서는 인수위원회가 "노조 편향적"이라고 지적했고, 외국인 투자자들도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비정규직 차별 철폐, 동일 노동.동일 임금 등의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盧당선자가 외국 기업인 대표들을 직접 만나 자신의 노사관을 천명하면서 그들의 불안감을 덜어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강경투쟁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주로 일어난다.

취업이 쉬워져 해고를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교육→재취업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강조한 부분은 그의 노사인식과 접근방식이 현실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새 정부 주요 과제인 노사문제에 대해 가닥이 잡힌 만큼 행정부는 최대한 근로자를 보호하되, 법과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는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동일 노동.동일 임금 등의 논란거리는 盧당선자의 말처럼 "현실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시간과 폭"에 맞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비현실적인 규제를 없애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은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 보호에 대한 규제가 세계에서 손꼽히게 강한 편이다. 이런 규제가 근로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노동시장을 경직시키면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노사문제는 한국의 국제신인도는 물론 21세기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칠 핵심 사안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으면서, 노와 사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노사문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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