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폭력.SF물 榮華는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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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홍콩의 문화와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적 장르다.

대륙으로부터의 이민 유입, 문화대혁명 등 대륙의 정치적 상황과 홍콩 사회의 문제점 등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홍콩 영화는 성숙해 왔다.

강시 시리즈를 비롯한 괴기영화, 리샤오룽(李小龍)과 청룽(成龍)으로 대표되는 무술영화, 1980년대 세계시장을 화려하게 누빈 '홍콩식' 폭력영화, 할리우드를 뺨치는 SF….'홍콩영화'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홍콩의 영화는 지난 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완연히 상하이의 지배아래 있었다.

70년대를 주름잡았던 '쇼 브러더스'도 상하이 출신 소(邵)씨 형제들이 세운 영화사다.

초기 무성영화부터 홍콩영화를 좌지우지했던 상하이 영화는 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를 피해 대량으로 유입했던 상하이 사람들을 통해 홍콩영화계를 더욱 장악한다. 대만쪽의 영향을 받는 우파와 대륙을 지지하는 좌파로 나눠지는 것은 50년대 상황이다.

하지만 대륙의 전제주의적 정권,대만의 독재에 모두 실망하면서 홍콩인들은 대륙.대만과는 무관한 홍콩인만의 정체성을 찾게된다. 이같은 분위기를 타고 70년대 이후 홍콩 특유의 영화가 대량으로 나온다. 리샤오룽의 성공, 그의 사망 이후 무술영화에 코미디를 가미해 나온 청룽식 영화 등은 이같은 기류 속에서 만들어진 대표작들이다.

이들은 70년대에 이어 80년대까지 크게 번성한다.

이런 여건 변화 속에 기존의 거대 영화제작사가 지배하던 구조가 독립 프로덕션의 제작시스템으로 대체되면서 영화는 홍콩을 상징할 만한 산업으로 발전한다. 독립프로덕션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제작 시스템의 융통성 등이 결합하면서 세계 영화시장에서 사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90년대 홍콩인들의 마음에 자리잡은 화두는 '홍콩의 중국 귀환'.

영국이 통치했던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 조국인 대륙으로 돌아가는 홍콩인들의 심리는 복잡했다. 리롄제(李連傑)의 '황비홍'으로 애국주의가 대두되는가 하면, 과거를 돌아보는 영화가 늘기도 했다. 요즘의 홍콩영화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기민한 상상력과 발빠른 제작시스템으로 성가는 높였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문화적 콘텐츠가 부족해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홍콩영화는 '저질'이라는 평가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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