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구의 거리문화 읽기] 경첩과 문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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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치와 대학 입시제도의 공통점은 늘 시끄럽고 말썽이라는 점과 어떻게 고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높고 이해 관계가 크기 때문이겠지만 그것을 다루는 최근의 신문과 방송도 정말 지겹다.

신문과 방송이 생산해내는 논점들은 되풀이에 되풀이여서 창조적인 데라고는 조금도 없는 데다 편파적이기까지 하다. 정치나 수능에 대한 기사들은 십 년 전 기사를 그대로 이름만 바꿔 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정치나 입시에 완벽한 제도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뀌려면 근본적인 시스템이 변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그람시 식으로 말하면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이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뭔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시끄럽게 구는 것이다.

이 지겨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을지로와 청계천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는 것은 약간 위안이 된다. 물론 을지로와 청계천은 관광지도 아니고 환락가도 아니며 문화와 관계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곳에 늘어선 가게들에 가득 쌓여 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의 종류와 디자인을 보는 즐거움은 어떤 관광지보다 낫다.

온갖 종류의 공구에서 화공약품, 플라스틱 제품들, 디스플레이를 위한 도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와 입시 따위는 잊어버리게 된다.

그 물건들 중 무엇보다 오래 눈길이 머무는 곳은 공구와 금속제품들을 파는 곳이다. 특히 경첩과 문고리, 손잡이 화장실용 도구를 파는 곳은 어떤 미술관보다 흥미가 진진하다.

패널 위에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을 나란히 붙여 전시하는 방식도 흥미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물건들의 디자인과 다양함이다. 경첩과 문고리 손잡이들을 파는 가게만 해도 그렇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종류의 문고리와 손잡이와 걸쇠들이 있을 수 있을까.

단단하게 반짝이는 금속들의 질감과 잘 어울리는 지극히 기능적인 디자인들.

물론 이 디자인들은 모두 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어디선가 따온 것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베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 물건들에는 어쩐지 그런 따위 지적 재산권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뛰어 넘는 당당한 뭔가가 있다.

물론 그 거리의 모든 물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나무 조각 전시장이나 실내 분수 같은 장식물을 파는 곳에서는 솔직히 그 키치적인 장식성이 끔찍하기 조차 하다. 그러니까 이 거리의 물건들도 장식적 용도가 아닌 것이 오히려 훨씬 아름다운 것이다.

마치 예술 작품이 그러하듯이. 혹시 정치나 수능 같은 입시제도 따위도 그런 것이나 아닐까. 경첩이나 문 손잡이처럼 단단하게 제자리에 붙어 있으면 될 것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장식이 덕지덕지 달라 붙어 점점 더 끔찍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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