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간첩에게 탈북자 지원업무 맡겼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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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울시 거주 탈북자 지원업무를 담당한 사람이 간첩으로 체포돼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거주 탈북자 전체의 42%에 달하는 1만여 명의 탈북자 신상정보가 북한에 넘어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간첩행위가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모(33)씨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탈북자 지원업무체계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 확인됐다. 또 간첩행위를 한 당사자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우리 정보당국의 능력에도 문제가 많음을 시사한다.

 최근 탈북자들이 북한에 재입북해 기자회견을 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 일부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신변위협을 받고 부득불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내 거주 탈북자 신상정보는 북한에 의해 이런 식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큰 중요 보안사항이다. 이런 정보가 무더기로 북한에 넘어갈 때까지 방치됨에 따라 앞으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거주 탈북자는 북한에 가족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일로 이들이 불안에 떨게 됐다. 또 국내 탈북자 가운데 북한을 적극 비난해 온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움직임도 여러 차례 적발된 일이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실제 테러행위가 발생할 위험성도 커졌다.

 정보당국은 탈북자가 입국하면 합동신문 등의 절차를 통해 위장 탈북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을 한다. 이번에 체포된 유모씨가 위장 탈북자인지는 아직 확인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황상 위장 탈북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파악된다. 이 점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를 가려내는 정보당국의 능력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소 주춤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내 입국 탈북자 수가 크게 늘었다. 이들 가운데 간첩활동 용의자를 빠짐없이 가려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칫 인권 침해의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이번처럼 대규모로 탈북자 관련 정보가 북한으로 유출되기까지 방치된 것은 큰 문제다. 정보당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드러난 탈북자 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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