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헨 제일은행장 조직개편으로 자기 색깔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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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선임된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이 영업점 조직 개편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코헨행장은 또 전임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과 달리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등 제일은행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첫 외국인 은행장였던 호리에 전임 행장이 1년10개월만에 갑자기 교체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지만 코헨 행장의 이같은 행보로 미뤄 제일은행이 금융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올 가능성이 적지않은 상황이다.

◇ 코헨 행장의 경영방침은=호리에 전 행장이 경질된 것은 대주주인 '뉴브리지 캐피털'과의 불화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기업 여신을 줄이자는 이사회의 방침과 반대로 하이닉스와 흥창 등에 대규모 대출을 해준게 발단이 돼 갈등을 빚어왔다는 것이다.

뉴브리지는 지난 9월말 이례적으로 제일은행의 여신분야에 대한 외부 감사까지 실시, 이같은 추측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이 때문에 제일은행이 앞으로 기업금융은 완전히 손을 떼고 소매금융에만 전념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코헨 행장은 호리에 행장 이임 회견장에서 "새로운 성장을 위해 은행을 이끌겠다"고 말했지만 취임 후에는 "업무파악에 전념하겠다"며 아직까지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하이닉스 반도체 채무조정안에 유일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특히 주채권은행이 내놓은 채무조정안 중 신규지원에는 참여하지 않더라도 청산가치에 3%의 가치를 더 얹어 전환사채로 받는 방안이 유리할 수도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하이닉스반도체와의 거래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의미다.

또 지난 6월에 지원한 1조원중 일부가 회사채 상환에 쓰인 것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굽히지 않고 있다.

채권단 일각에서는 제일은행이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영업점 개편을 발표했다. 영업점을 기업금융과 소매금융으로 나누고 전화상담이나 서류처리를 전담하는 대형 관리센터를 설립한다는 것.

개편 과정에서 남는 인원을 정리하기 위해 명예퇴직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 은행 관계자는 "제일은행의 경우 기업금융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여왔기 때문에 영업점 개편은 결국 소매금융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 조기매각 추진하나=뉴브리지 캐피털이 제일은행을 조기에 매각할 가능성도 초미의 관심사다. 코헨 행장의 전격적인 등장이 조기 매각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제일은행은 공적자금 투입과 풋백옵션 행사로 부실이 거의 없는 상태다. 여수신 등 덩치는 다소 줄었지만 이익은 지난해 3천억원, 올해 상반기에만 2천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서는 당장 팔아도 4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제일은행의 덩치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여서 빨리 팔수록 이익규모가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해 코헨 행장은 호리에 행장 이임 회견에서 "아직 매각할 의사는 없다"고 잘라말했다.

1999년 12월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을 인수할 때 정부와 맺은 투자계약서에는 1년간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매각금지 기간은 이미 지난 것이다. 다만 뉴브리지가 지분을 매각하려면 예금보험공사의 동의를 받거나 예보의 지분도 동일한 비율로 팔도록 되어있다. 이와 관련, 예보 관계자는 "아직 매각과 관련해 특별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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