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대증권 매각협상 직접 개입

중앙일보

입력

현대증권 임원들이 지난 9월 초 사외에서 이달 말 실시될 유상증자의 신주발행가격 결정과 관련, 기존 이사회의 가격결정을 번복하고 미국 AIG 컨소시엄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쓴 것으로 밝혀졌다.

이 확약서 내용은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를 거쳐 AIG 컨소시엄과 금융감독위원회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AIG 컨소시엄은 현대증권.현대투신 등을 인수하기로 하고 현대측과 협상을 해왔다.

이에 앞서 금감위는 지난 8월 현대증권에 AIG측에 3자 배정할 유상증자 신주발행가격 결정을 위한 이사회를 개최하라고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최근 입수한 현대증권의 지난 8월 23일자 이사회 초안에 따르면 금감위는 AIG측과의 의향서(MOU)체결을 앞두고 현대증권에 이사회 개최를 요구했다. 현대증권 관계자는 "이사회 직전 현대그룹 구조조정 본부를 통해 전달된 문건에는 이사회에서 결의할 내용까지 나열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사회 초안에는 "(당사가) 동안에 따르지 않을 경우 현대투신 등과 함께 유동성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으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현대증권 이사회 임원들은 지난 8월 23일 이사회에서 유상증자 신주발행가격을 주당 8천9백40원으로 결정한 뒤에도 AIG 컨소시엄 등으로부터 발행가격을 7천원으로 내리라는 압력을 계속 받았다는 것이다.

현대증권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 9월 7일 AIG측에서 발행가격을 7천원으로 낮추지 않으면 협상을 파기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받았다"며 "금감위에서도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분위기였다"고 털어놨다.

이에 따라 홍완순 대표이사 등 현대증권 이사회 이사 5명이 지난 9월 8일 분당의 한 호텔에서 AIG측의 요구에 따라 주가등락과 관계없이 7천원에 신주를 발행하겠다는 확약서에 서명했다. 한편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현대증권 신주 발행가는 현대와 AIG측이 합의해 정한 것이며,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 확약서의 법적 효력에 대한 엇갈리는 해석=시민법무법인의 김석연 변호사는 "이사회의 확약서가 정부측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면 소액주주들은 이사회의 가격결정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측 변호를 맡은 율촌법무법인측은 확약서 작성사실과 관련, 주가등락에 따른 이사들의 자발적인 결의를 위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AIG측의 현대그룹 금융사 인수에 현대증권의 존립이 달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행위도 아니라고 밝혔다.

임봉수.하재식 기자 lbs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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