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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헌법이 지켜지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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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지금 중국 지식인 사회의 최대 화두는 ‘헌정(憲政)’이다. 신년사 ‘헌정몽(憲政夢·헌정의 꿈)’에 대한 당국의 검열로 불거진 ‘남방주말(南方周末) 탄압사건’의 여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헌법이 잘 지켜진다면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점이다. 모두 138조로 되어 있는 중국 헌법을 뜯어보게 된 이유다.

 우선 모든 중국인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헌법 35조는 ‘중국 공민(公民)은 누구나 언론·출판·집회·결사·여행·시위의 자유가 있다(35조)’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36조), 신체의 자유(37조), 더 나아가 통신의 자유와 통신비밀의 보호도 규정돼 있다(40조). ‘헌법의 세계’에서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은 있어서는 안 된다. 당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인터넷 접속을 막거나, 전화 내용을 도청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도 인정된다(13조). 지방정부가 개인의 땅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여기에 모든 국민은 행정기관의 부당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리를 갖고 있다(40조). 이 정도면 서방의 어느 헌법에도 뒤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은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43조)’는 조항도 있다. 중국 법률학자들은 ‘인권, 자유, 복지 등 선진 헌법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아름다운 헌법’이라고 말한다.

 국민 주권의 원칙도 살아 있다. 헌법 제2조는 ‘국가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서 나오며, 인민의 뜻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회)를 통해 행사된다’고 했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은 전인대 대표를 자유선거로 뽑는다(3조). 이렇게 구성된 전인대는 국가 주석(President)을 뽑고, 국가 주석이 총리와 각 부 부장(장관) 등을 임명토록 되어 있다(80조). 전인대는 국무원(행정부), 중앙군사위(군), 최고인민법원(사법) 등을 견제할 수 있는 감독권도 갖고 있다.

 이 같은 ‘헌법의 세계’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은 암울하다. 공산당이 헌법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기관의 핵심 자리는 당 중앙위원회 소속 인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권력을 견제할 길은 막혀 있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무시된다. 헌정(憲政)은 없고 당정(黨政)만 남은 것이다. 부패가 자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지난해 12월 4일 현행 헌법 공포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헌법의 생명은 실천에 있으며, 헌법의 권위 역시 실천에 있다’며 헌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의 권력을 상당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현행 법을 준수하라는 지식인들의 당연한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진핑 정치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