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공연변경 미리 알렸더라면…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4일 오후 10시. 런던필의 예술의전당 공연 직후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신체 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주최측인 예술의전당은 25일 공연에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를 긴급 투입했고 프로그램도 슈만.R 슈트라우스를 차이코프스키로 교체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지휘자.프로그램 변경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공연장에 도착한 직후. 티켓을 환불해 되돌아가자니 먼길을 오느라 보낸 시간이 아깝고, 그냥 들어가자니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아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환불된 티켓은 55장) .

불가피한 사정으로 지휘자.프로그램이 바뀐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2천6백명의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선택 기회를 주었더라면 예술의전당의 위기관리 능력이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지휘자가 병원으로 실려간 직후 지휘자.프로그램의 변경 작업이 진행됐고, 윤곽이 잡힌 시점은 이튿날 조간신문에 충분히 알릴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럼에도 공연 당일 오전에 이 사실을 언론사에 뒤늦게 알림으로써 대량 환불사태를 우려한 조치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팬들이 많아 공연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서도 떳떳하게 공연을 진행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의 '고객의 소리'에 관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측이 30일 '런던필 지휘자 교체에 관한 예술의전당 입장'이라는 글을 올렸다.

지휘자.프로그램 교체가 확정된 시점이 25일 오전 9시30분 테미르카노프가 후쿠오카발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한 시간이어서 미리 알리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지휘자가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2천6백명의 관객들이 무더기로 헛걸음을 하고 되돌아갔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연주 곡목이 3곡에서 2곡으로 줄어든 것이나 부족한 리허설에 대한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취소되거나 또는 지휘자.프로그램이 교체될 예정이라는 사실만이라도 미리 알려 표를 구입한 관객들이 사태 추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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