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보이는 행사만 요란한 절전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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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

7일 오후 2시50분쯤 서울 명동 포스트타워 주변의 한 편의점 앞. 수십 명의 취재진이 50대 후반의 한 남성을 둘러싸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길을 지나던 관광객과 행인들이 호기심에 취재진 주변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편의점 앞은 순식간에 사람으로 꽉 찼다. 상당수는 유명 연예인이라도 나타난 줄 잘못 알았던 모양이다.

 한 외국인이 물었다. “저분은 누구죠. 지금 뭐 하는 거죠.” 한국의 장관(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절전 캠페인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이런 행사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렸느냐”고 한 뒤 자리를 떴다.

 홍 장관은 이날 절전 동참을 강조하기 위해 편의점뿐만 아니라 커피전문점, 화장품 매장에 절전 스티커를 붙이는 행사를 했다. 한 화장품 매장 앞에서는 여러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느라 한동안 머물렀다. 하지만 홍 장관이 한창 절전을 강조하는 동안에도 주변의 다른 매장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1층 매장 서너 곳 가운데 한 곳은 문을 열어놓고 장사를 했다. 한 상인은 “문을 닫아두면 외국 관광객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에너지 절약이라는 ‘대의’보다 장사라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날부터 전기를 많이 쓰는 건물의 실내온도를 20도 이하로 유지하고 출입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를 어길 땐 과태료도 300만원이나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날의 에너지 절약 외침은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오히려 명동을 관할하는 구청장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이에 앞서 홍 장관과 통신사·편의점·외식업계 대표 등 40여 명이 참석한 ‘서비스업계 동계절전 자율 결의대회’에서 최창식 서울시 중구청장은 “(오늘 참석한) 큰 업체는 (절전을 설득하기가) 괜찮은데 중소상인이 설득하기가 어렵다”며 “중소상인에게 절전 의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요란한 행사보단 중소상인들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는 절전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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