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90% 4곳, 참고서값 담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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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김모(42)씨는 지난해 1월 초 초등학생 자녀들의 새 학기 참고서를 사기 위해 한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2011년 말에 비해 책값이 크게 올라서였다. 혹시나 싶어 다른 인터넷 서점과 대형마트에도 가봤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참고서가 날씨에 따라 공급이 달라지는 농산물도 아니고 불과 며칠 사이에 책값이 한꺼번에 오른 것은 황당했다”고 하소연했다.

 이는 출판사들이 서로 짜고 인터넷 서점과 대형마트에 책값을 많이 깎아주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났다. 공정위는 초등생과 중·고생 참고서 값을 담합한 천재교육·두산동아·비상교육·좋은책신사고 4개 출판사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2일 밝혔다. 공정위는 또 천재교육(3억6000만원)을 비롯해 두산동아(2억4000만원)·비상교육(1억5000만원)·좋은책신사고(1억5000만원)에 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과장은 “초등 참고서는 도서 정가제가 적용되지 않아 서점이 자율적으로 책값을 정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출판사들이 인터넷 서점과 대형마트에 할인율을 제한하도록 강요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 참고서 시장에서 해당 4개 업체의 점유율은 90%에 달한다”며 “이 업체들이 담합하면 소비자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공정위에 따르면 4개 출판사와 서점연합회 담당자들은 2011년 12월 인천 송도의 한 호텔 식당에서 만나 초등생과 중·고생 참고서의 할인율을 15% 이내(단골 고객 적립금 포함)로 억제하기로 합의했다. 기존 할인율은 초등 참고서를 기준으로 많게는 26%, 적게는 20%에 달했다. 참고서 정가가 1만원이라면 기존에는 7400~8000원에 팔던 것을 적어도 8500원 이상을 받자고 출판사들이 짠 것이다. 이후 출판사들은 할인율 담합을 지키지 않는 서점이나 대형마트에 대해선 아예 거래를 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도서 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따라 책값의 할인율을 원래 가격의 10%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적립금이나 마일리지 같은 단골 고객 우대혜택은 책값의 10% 이하에서 허용된다. 따라서 인터넷 서점 등에선 도서 정가제를 하더라도 책값의 최대 19%(적립금 포함)까지 깎아 줄 수 있다. 현재 중·고생 참고서에는 도서 정가제가 적용되지만 초등생 참고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조 과장은 “중·고생 참고서도 도서 정가제에서 허용한 19%보다 낮은 할인율을 적용토록 합의·강요했기 때문에 담합에 해당한다”며 “참고서는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쉽게 가격을 비교·검색할 수 있어 담합이 아니고선 일제히 책값을 올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정완·박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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