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재집권 겨냥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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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14일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세번째 참배함에 따라 한국.중국의 대일외교에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주변국 협조체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 등 전몰자들을 '군신(軍神)'으로 추도하고 있어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유산으로 꼽힌다.

◇참배 배경=고이즈미 총리가 "1년에 한번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겠다"고 이미 공언한 데다 국내외 상황을 감안할 때 일찍 참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는 2001년 4월 총리 취임 후 매년 한차례(2001년 8월.2002년 4월) 참배했다. 고이즈미는 올 9월 총리 임기가 끝난 후 재출마할 계획이어서 신사참배로 자민당 내 우파의 지원을 얻으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지(時事)통신은 14일을 참배일로 택한 데 대해 "다음달 한국에서 신정부가 출범하고 3월에 중국에서 새 지도부 구성에 따른 국무원 인사가 끝나길 기다려 양국 방문을 검토 중인 총리가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찍 참배했다"고 분석했다.

◇외교 파장 클 듯=고이즈미가 한국.중국에 약속했던 '야스쿠니 신사 대체 추도시설'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전격 참배까지 이뤄져 주변국의 불신은 한층 커지게 됐다.

한국 정부는 성명에서 "평화를 기원한다면서 평화를 파괴한 전범을 참배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의 장치웨(章啓月)대변인도 "중.일 관계와 중국 인민의 감정을 크게 해치는 것"이라고 공박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은 14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중국의 반발에 대해 "그렇게 법석을 떠는 쪽이 문제 아니냐"고 적반하장격으로 발언, 안이한 상황인식을 드러냈다.

이번 참배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는 한층 깊어지고, 북핵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온 일본 외교는 적지않은 타격을 입게 됐다.

특히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직접 나서서 수차례에 걸쳐 참배 중지를 요구했던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날 인터넷판에서 "일본은 북.일 수교, 납치,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는데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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