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회비·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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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침식사를 끝내자 동생이 학교에 간다면서 도장을 달라고 한다. 졸업한지가 언젠데 뭣하러 학교에 가느냐고 묻자 「어린이저금」을 찾으러 간다고 했다.
낮이 되어 동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사은회비 안 내었다고 안 줘요』
졸업 며칠 전 동생이 「프린트」쪽지를 갖고 왔기에 읽어보니, 선생님의 은공을 조금이나마 갚으려고 일금 3백원씩 갹출하니 협조를 바란다면서 누구누구라고 서명되어있었다.
그건 학부형 각자가 자기 의사대로 하면 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런 「프린트」를 보낼까.
며칠 후 동생이 우는 낯으로 선생이 사은회비 안 가져온다고 야단하면서 까짓 3백원 요즘 쓸게 있는 줄 아느냐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 졌다. 도대체 선생이 사은회비를 어린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분노 때문에 끝내 사은회비를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푼푼을, 손때묻은 동전을 저금한 것과 사은회비와 바꾸다니, 사은회비로 동심에 멍을 주는 선생에게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분노를 넘어 허전함과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김복수·24세·경북 봉화군 봉화면 거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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