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시진핑·아베, 과거 아닌 미래를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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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사람이 만드는 역사에서 리더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지금 동북아는 한국, 중국, 일본의 리더십이 동시에 교체되는 특수한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의 5세대 리더십은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로 넘어갔고, 일본에서는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26일 출범한다. 지난주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은 내년 2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북한까지 포함하면 동북아 4개국 리더십이 최근 1년 새 모두 교체되는 셈이다.

 동북아는 세계 2위와 3위, 15위의 경제대국이 포진해 있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이다. 한·중·일 3국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넘는다. 중국의 힘이 급속히 커지면서 동북아는 세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지금 동북아는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은 핵 운반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한·중·일 3국의 공동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중·일의 새 리더십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 공동번영의 중차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박근혜와 시진핑, 아베 신조 세 사람은 냉정과 자제, 협력으로 이 지역 16억 인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베 총리 내정자의 태도다. 만일 그가 총선 공약대로 영토와 과거사 문제에서 극우주의와 국수주의에 기우는 과거회귀적 태도를 보인다면 동북아의 화해와 협력은 요원하다. 과거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앞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미래지향적 태도를 보일 때 동북아는 리더십의 동반교체를 역사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아베 총리 내정자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을 국가 차원의 행사로 격상하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공무원을 상주시키겠다던 총선 공약의 유보를 시사한 것은 일단 다행스럽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거나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나 중국도 일본의 열패감을 자극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영토 분쟁을 활용하거나 과거의 굴욕을 앙갚음 한다는 식으로 출구도 주지 않고 일본을 몰아붙이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영토 문제는 ‘현상유지’를 원칙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발적 충돌이 겉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의 새 리더십은 3국 정상회의의 틀을 최대한 활용해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동북아 안보의 심대한 위협 요인인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3국 간 협력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리더의 자세가 중요하다. 각자의 어깨에 주어진 역사적 무게에 걸맞은 책임 있는 태도를 세 사람에게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