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들 "비현실적 규제" 개선 요구

중앙일보

입력

A투신 펀드매니저 K씨는 최근 환매가 돌아온 펀드의 회사채를 같은 회사의 다른 펀드에 넘겼다가 금융감독원에서 불법 자전(自轉)거래로 적발됐다.

펀드내 채권의 평균수익률에 가장 가까운 채권부터 팔도록 돼 있는 자전거래 규정을 어기고 이보다 수익률이 높은 회사채를 먼저 팔았다는 이유였다.

K씨는 그러나 상대방 펀드의 성격에 가장 적합한 채권을 골라 제값에 매매한 것은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K씨는 "시장 평균 수익률만 따진다면 자전거래는 불가능하다"며 "이미 시장가격으로 채권을 평가하기 때문에 어느 채권을 옮기든 펀드 가치가 왜곡될 염려도 없다"고 주장했다. 펀드의 건전성을 감시하는 안전장치인 투자신탁 감독규정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투신권은 펀드가 장부가로 평가되던 지난해 6월 이전에 제정된 규정들이 시가평가로 바뀐 현재까지 적용돼 불법 운용을 양산한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투신권의 수익률 조정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시가평가도 아직 정착되지 않아 규정 개정은 생각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금감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투신사들의 불법 자전거래 규모는 13조8천8백4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시장수익률과 동떨어진 가격에 채권을 자전거래한 경우가 6조4천2백83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평균 수익률에 가까운 채권부터 팔지 않은 경우도 6조8백28억원에 달했다.

투신권은 그러나 이는 낡은 규제를 무리하게 적용했기 때문이란 입장이다. 평균수익률과 가까운 채권부터 팔아야 한다는 규정은 장부가로 평가하던 때 실제 높은 수익이 나는 채권을 매입 당시의 싼값으로 특정펀드에 몰아줘 수익률을 높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채권이 시가로 옮겨지므로 굳이 옮길 채권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규정을 지키려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평균 수익률이 국공채와 회사채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시장수익률도 적용 잣대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까지 기준으로 삼았던 증권업협회의 시가평가테이블이 실제 채권 거래가격과 최고 2% 이상 차이가 나는 등 현실과 맞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그러나 투신사들이 거액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편법 운용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규정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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