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특사는 솔직히 설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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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정부의 입장이다. 또 "북.미 간에 중재란 말이 거북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사태의 주도적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협상'아닌 '대화', '중재'아닌 '주도'…. 무슨 말인지 혼란스럽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해석은 그만두고라도 동맹 간에 오가는 용어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이처럼 상대의 말귀조차 알아듣기 힘든 상황에선 북한 얘기만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공조'는 무리다.

사실 심심찮게 거론되는 한.미 간 견해 차이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부시 행정부 인사들의 신뢰 결여에서 출발한다. 2년여 전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시작된 우방 간 조율의 '원초적' 한계가 쌍방의 치유 노력 없이 북핵 문제로 곪아터졌다.

민족이익과 국가이익이 부딪치는 경우라 어쩔 수 없다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 이해와 접근법에 있어 양국 간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북협상에 참여했던 이들은 북한이 여전히 남측의 진의나 미국측 입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한다. 북한이 아직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태를 생각해 보고 또 이를 바탕으로 정황을 판단하는 데 미숙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핵동결 해제를 서두르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과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 가능성을 표명하며 미국을 압박하는 계산된 행보는 이라크 침공 준비에 여념없는 미정부가 대북 정책에 있어 내분을 겪는 상황을 이용하려는 술책이란 점에서 북측이 사태 파악에 어설프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세기 동맹국이란 한국.미국이 상대의 입장이나 사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가 문제다. 북핵 문제를 풀어가며 한.미 양국이 입장조율에 어려움을 겪는 배경에는 달라진 미국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또 상대를 이해하려는 상호노력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북한과 수없이 대화했고 또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한다고 강변하는 한국이 북측 의도나 행태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못하는 데 대해 미국이 답답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북한의 실체에 대해 실증적으로 미측에 설명할 수 없다면 우리가 사태를 '주도적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욕이 얼마나 먹혀들는지 자신할 수 없다.

머지않아 대통령당선자의 특사가 미국을 방문한다. 그가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내 반미 분위기에 대한 해명이나 당선자의 대미 인식에 대한 오해 불식에 앞서 북한을 보는 우리 정부의 시각을 설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설명이 경험적 근거와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미국을 설득해 우리의 대북 해법에 동참토록 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전하는 미봉책으로 특사의 임무가 끝나지는 않는다. 반미 정서의 출발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와있는지, 왜 우리가 대북 봉쇄에 쉽사리 동참하지 못하는지 우리의 현실과 어려움에 대한 진솔한 의사 전달이 중요하다.

즉 북한 다루기를 놓고 동맹 간에 좁혀지지 않는 '코드'읽기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이 특사의 임무다. 그리고 특사 활동의 성과는 미정부가 대북 전략을 둘러싼 자신들 내부의 논란을 끝내고 우리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의 인식 '코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쪽은 북한 아닌 한국이다.

길정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