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 건너는 「아름다운 초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산전금추(63·일본 신나천현 천기시 구본435)씨와 이원옥(76·인천시 연수동 91)씨-두 노인은 함께 18년간 교단에 섰던 인천 상업학교(현 인천고) 교정에서 20년만에 서로만났다. 두 노 교사들은 50여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한동안 두 손을 꼭 잡고 그저 망연히 서 있었다.

<인천서 교직18년>
산전씨는 지난 5일 일본인 관광단 틈에 끼여 NWA기 편으로 18년 동안 교육에 종사했던 한국 땅을 밟았다. 『제 2의 고향 한국에 죽기 전 꼭 가고 싶었다』는 산전씨의 소망은 한국인 제자들과 일본인 제자들의 따뜻한 초청과 여비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독립 운동 돕기도>
산전씨는 1926년3월 약관 22세로 인천 남산상업학교(한국인 학교)에 영어교사로 부임했다. 1932년 일본인만 다니던 북상과 통합되자 두 나라 학생사이엔 날마다 싸움이 벌어졌고 산전씨는 언제나 한국인 편에 섰었다고 한다.
1943년 봄, 41연도에 졸업한 제자 44명이 비밀결사 조직혐의로 대전 형무소에 갇혀 4명이 옥사하자 밤낮으로 구명운동에 동분서주하다가 산전씨는 그만 쫓겨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미군정 땐 통역도>
인상에서 쫓겨난 후 산전씨는 서울 한성상업에 근무 중 일본이 패전하자 일본인임에도 곧 미 군정청 통역으로 일했다.
46년3월2일 『선생님, 여기남아 후배를 키워 주십시오』-수많은 제자들의 이슬 맺힌 전송을 받으며 만 21년이란 자신의 청춘을 교육을 위해 불살랐던 한국 땅을 떠났던 것이다.

<장학금도 남기고>
이「아름다운 초대」에 일본측 제자들도 지지 않았다. 한국인 스승 이 노인을 그들도 내년 봄에 초대-. 그들도 한국측과 똑같이 「릴레이」식으로 자기 집에 모시겠다는 것이다.
이 뜻밖의 소식을 산전씨를 통해 선물 받은 이 노인과 제자들은 만세나 부를 듯 기뻐했다. 남은 여비 1백 달러 중 40달러를 장학금으로 기증한 산전씨는 인천시장의 초대를 받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끝내고 19일 하오2시40분 NWA기 편으로 다시 한국을 떠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