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내년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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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가 ‘3’만 찍어도 다행이다.”(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내년 경제에 대한 전망은 마치 눈 내린 도시의 빙판길 같다.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자칫하면 휘청 넘어질 판이다. 그래서 내년 성장률이 3%만 넘어도 선방이란 분석마저 나온다. 드러내놓고 말만 못할 뿐 정부의 걱정도 크다. 경기가 살아날 기미는 안 보이는데 세금은 더 거둬야 하는 외통수에도 몰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9일 “서너 달 전에 비해 하방(성장률 하락) 가능성이 커졌다”며 “수출은 선방하고 있지만 소비와 투자가 여전히 부진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내년 성장률 전망(4%)을 3%대 초반으로 낮추는 게 불가피해졌다는 뜻이다. 이미 한국은행(3.2%)과 한국개발연구원(KDI·3%)은 내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계 금융사는 더 박하다. 노무라는 2.5%, 메릴린치는 2.8%를 불렀다.

 실물경기의 악순환은 구조화되고 있다. 소비·투자가 얼어붙으면서 기업·가계가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양상이다.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72개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51.2%)이 내년 경영 기조로 ‘긴축 경영’을 꼽았다. 지난해보다 9.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투자는 줄이고, 채용은 덜 하겠다는 의미다. ‘확대 경영’은 22.3%, ‘현상 유지’는 26.4%였다. 기업인들은 현재 경기를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안 좋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에서 기업인이 전망한 내년 성장률 평균치는 2.7%였다.

 해외 여건도 안갯속이다. 이재준 KDI 동향전망팀장은 이날 ‘KDI 경제동향’을 통해 “미국과 중국의 일부 실물경기 지표가 개선되고 있으나 유로존 재정위기 등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 거둘 일도 걱정이다. 국세청이 내년에 거둬야 할 세금은 204조원으로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선다. 올해보다 6% 증가했다. 소득세는 12%, 부가가치세는 9%나 더 거둬야 한다. 이는 현재 정부가 낸 예산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새 정부의 복지정책 등을 감안하면 증세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세수 여건은 빠듯하다. 올해 세수는 예상보다 3조원 이상이 부족할 전망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매년 못 쓰는 예산(불용액)이 2조원 정도 돼 올해는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며 “문제는 올해 세수가 목표에 미치지 못했는데 내년에는 써야 할 돈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변 연구위원은 “ 환율 변동, 물가 관리도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바짝 신경 써야 할 현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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