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연명치료 중단 결론 낼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신성식
선임기자

『관촌수필』의 작가 고(故) 이문구씨의 흔적을 찾아나선 것은 2004년 12월이다. 오전 9시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부인을 만났다. 다소 이른 시간인 데다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 잔뜩 긴장했다. 부인은 어렵게 얘기를 꺼냈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부인이 두어 시간가량 들려준 이씨의 스토리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이씨는 위암이 악화돼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자 퇴원했다. 동시집과 산문집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다. 계약금 100만원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큰아들에게 유언했다. “혼수상태가 되거든 이틀을 넘기지 말고 엄마·동생 손잡고 산소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장하지 마라. 화장해서 관촌 숲에 뿌리고 제사 지내지 말고 식사 같이하며 나를 기억해다오.”

 이씨는 2003년 2월 이틀 만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이씨의 스토리는 인간답고 품위 있는 죽음, 즉 웰다잉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다. 그 이후 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돼 왔고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 이후 연명치료 중단은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라는 민간단체가 주도하는데 참여자들이 의향서에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담아 서명한다. 생생할 때, 건강할 때 분명히 해 두자는 뜻이다.

병실에서도 일부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한 말기 환자는 “길어봐야 며칠, 몇 시간인데 무의미한 연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며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했다.

 현대 의학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20가지 정도의 연명치료 기술을 동원하면 한두 달 정도 더 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이게 삶의 연장일까 .

 그런데도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연명치료가 성행한다. 중환자실에서 1200명가량의 환자가 그리하고 있다(복지부 추계). 이들은 사망 전 1년간 의료비를 일반환자의 14배나 쓴다.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시해도 의료진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김 할머니 사건의 대법원 판례만으로는 연명치료 중단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마침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9월부터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이번에는 반드시 결론을 내 2010년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당시 연명치료 중단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세부 사항에서 엇갈려 없던 일이 됐다. 법제화가 안 되면 일본처럼 지침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법제화 전 단계로 사전의료의향서만이라도 근거를 마련해 힘을 실어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