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실적으로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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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최고경영자(CEO)로 살아가는 데는 장단점이 있다. 세인의 사랑을 받는 CEO라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정당화되겠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정당한 행동도 매도당하기 일쑤다.

지난주 제너럴 일렉트릭(GE)社의 잭 웰치와 휼릿패커드(HP)社의 칼리 피오리나가 어떤 차별 대접을 받았는지를 비교해보라. 웰치의 그답지 않은 자잘한 행동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피오리나는 타당성 있는 합병을 발표한 후 혹평을 들었다.

우선 웰치는 전형적인 스타 CEO다. 지난주 GE 회장직에서 은퇴한 그에게는 환호와 상찬, 선망의 뉴스 보도가 줄을 이었다. 웰치가 마지막으로 추진하던 하니웰社 합병 건이 성사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는 회사로부터 평생 금융설계권, 법인 리무진 및 전용기의 평생 사용권, 평생 골프 회원권 등 은퇴 선물을 얻어냈다.

다른 CEO였다면 혹독한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억만장자이며 하루 1만6천달러짜리 컨설팅 주문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그 정도의 재력가가 그런 비용을 회사에 떠넘긴 처사는 아무래도 볼썽사나웠다. 웰치만큼 유능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인기가 있으면 뭐든 용서가 되는 모양이다.

반면 피오리나는 1999년 루슨트 테크놀로지스社의 고위직을 박차고 HP를 경영하는 최초의 외부인사이자 다우존스 지수에 편입된 30대 기업을 운영하는 최초의 여성이 됨으로써 일약 스타 CEO 반열에 올랐다.

이직 당시 그녀는 루슨트의 스톡옵션을 포기하는 대가로 HP로부터 1억달러를 받았다(그녀가 루슨트를 떠날 때 70달러가 넘던 주가는 지금 겨우 6달러 선이다).

그러나 오늘날 피오리나는 하는 일마다 틀어지고 있다. 밀려들던 찬사는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간 지 오래됐다. HP가 예상 수익과 매출 달성에 번번이 실패한 데다 특히 컴퓨터 사업부문은 적자를 내기 시작했지만 피오리나는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주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컴팩 컴퓨터社를 매입하겠다는 그녀의 뒤늦은 결정에 월스트리트는 철저히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HP의 주가는 9월 7일 소폭 상승한 후 22% 하락한 채 한주를 마감했고 컴팩은 19%의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됐지만 14% 하락으로 지난주를 마감했다.

이제 분명해진 HP의 문제는 컴퓨터가 서비스를 배제한 ‘상품’이 됐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피오리나가 최고경영자로서 진작에 예견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럴 경우 메이커들은 가격경쟁에 의존하게 되지만 HP는 가격경쟁력이 없다.

HP의 주수입원은 프린트 부문, 그중에서도 교체용 잉크 카트리지다. HP가 컴퓨터 사업 부문을 포기한다면 프린트 판매가 위축되고 향후 카트리지 판매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피오리나가 지금까지 컴퓨터 부문을 포기하지 않고 확대해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가 아직 좋은 평가를 받던 18개월 전이었다면 컴팩과의 합병 계획은 월스트리트의 환호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월스트리트가 그녀를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합병 계획이 당국의 승인을 받더라도 주주들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론상 양사의 합병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가 막대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피오리나가 통합된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하리라는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돌이켜 보건대 피오리나는 HP에서 자신의 인기를 허비했다. 그녀가 처음 내린 결정은 HP의 ‘얼굴마담’을 자임한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잡지의 표지모델로 나서는가 하면 자사의 홍보성 토크쇼에도 다수 출연하며 높은 성장전망을 제시했다(나중에 결국 철회했다). 2년 전 수익 악화를 겪는 HP에 합류한 피오리나는 1997년 역시 수익 악화일로의 AT&T에 합류한 마이크 암스트롱과 비교된다.

그는 AT&T의 장거리 전화 사업의 수익성이 생각보다 훨씬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음을 간파하고 신속히 대안을 마련했다. AT&T의 주식을 자금삼아 광역 서비스 제공을 위한 케이블 TV와 광섬유 통신망을 구축한 것이다.

나는 암스트롱이 계획의 실행에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적어도 회사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에 대책을 내놓았고 자신의 명성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바로 피오리나가 실패한 부분이다.

성공적인 스타 CEO가 되기 위한 관건은 주가를 올려놓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있다. 웰치는 주가를 올렸지만 피오리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아니라 오로지 돈일 뿐이다.

Allan Sloan 금융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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