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통화의 발상과 종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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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이조통화의 발상과 종류, 그리고 동봉한「도광통화」는 어느나라, 어느 시대 것인지? (안동시 광서동 8반17·김창동)
【답】태조, 태종시대에 간편한 화폐를 통용시키고자「조선통보」라는 대형의 동전을 만든 일이 있었고, 또 저화도 사용하게 하였으나 이내 이것이 전국적으로 통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화폐가 편리한 것을 생각한 식자는 종종 나와서 드디어 임진왜란때의 수상 이덕형이 그것을 제창하였고, 인조 11년에는「상평통보」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13년에 재주까지 하다가 또 통용을 보지 못하였다. 그후 김육이 또 열심히 화폐의 편리함을 주장하여 효종 2년에 역시「상평통보」를 만들어서 서북도와 서울시내에 사용케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5, 6년후에는 또 쓰지않게 되었다. 숙종 4년에 이르러 다시 화폐의 필요성이 주장되고 이해 이후로 여기저기의 관청에서「상평통보」를 주조하게 되었는데 그 질은 구리(동)와 석의 합금으로서 청동전을 만들었다. 원래 동전은 호조의 상평청에서 주조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신휼청, 사복청, 훈련도감등의 중앙관청 또는 지방관하에서도 만들어 배자로써 그 만든 곳을 표시하였다. 그런데 후에는 책임을 밝히는 이 배자도 박지 않아서 질이 나쁜 화폐가 횡행하게 되었다. 고종, 대원군 시대에는 재정곤란을 막기 위해서 당백전, 당오전도 일시에 생겼으며, 고종 28년이후에는 전환국에서 근대적인 금화, 은화, 동화도 만들었으나 자주적인 발달을 보지 못하고 일본의 화폐정책에 말려 들어갔다. 동전인 도광통보는 우리나라 것이 아니고, 청말도광 연간에 주조한 것이다. <이홍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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