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춤꾼 최승희는 친일파? 민낯의 그를 다시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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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승희 평전
강준식 지음, 눈빛출판사
424쪽, 1만5000원

솔직히 평전(評傳), 재미없다. 일종의 위인전 아니던가. 훌륭한 사람 잘났다고 쓴 건데,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강권하면 마지 못해 읽을까 누가 그런 고리타분한 걸 보랴. 근데 『최승희 평전』은 의외다. 술술 읽힌다. 마치 잘 짜인 소설책을 만난 듯, 한번 잡으면 쉬 놓을 수 없다. 그건 책을 잘 썼기 때문일까, 아니면 최승희의 굴곡진 인생 때문일까.

 우선 디테일이 살아 있다. 평전 하면 떠오르는 무미건조함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너 낙제했니?” “낙제는 아니야.” “그럼 왜 울어?” “나이가 적으니 1년만 놀다가 내년에 오래.”

 이 정도면 거의 시나리오 수준 아닌가. 이런 식의 대화체 문구가 꽤 많다. 그렇다고 그냥 있을 법한 사건을 저자가 대충 상상해서 쓴 게 아니다. 상당 부분 최승희 수기를 토대로 했고, 당시 신문 기사와 잡지 등을 샅샅히 뒤졌으며, 최승희의 스승과 친지, 그리고 제자의 증언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기자 출신다운 꼼꼼함과 조사량이 책 전반에 묻어난다. 팩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충족시킨 셈이다.

 새삼 최승희의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 책은 담담히 증언한다. 특히 최승희 하면 고정관념처럼 떠오르던 ‘친일파’라는 딱지를 떼어내는 데 공을 들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민족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을 완료한 뒤 농토를 대대적으로 수탈하면서, 넉넉했던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증오가 컸다는 거다. 16세 때 무용 스승 이시이 바쿠를 만나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할 때도 “저는 죽어도 일본 천황에게 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던 그다. 일제 말기 그가 일본군에 헌금을 내고, 위문공연을 한 건 ‘코리아 댄서’로 해외 활동한 것을 가리기 위한 의도된 친일 행위였음을 책은 강조한다.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남편 안막과의 결혼 스토리, 북한에서 숙청되는 과정 등은 이 책의 성과다. 그의 동서이자 제자였던 무용가 김백봉씨는 이렇게 회고한다.

 “최승희 선생은 화장할 때도 춤 생각을 했죠. 밥 먹으면서도. 그야말로 춤 속에서 호흡했습니다.” 성공이라는 좌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라면 포장되지 않은 최승희의 민낯을 접해보는 것도 좋은 기운을 얻기에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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