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미 소설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우글거리고 꿈틀거리는 것들을 소설 속에서 반복해서 다루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꼭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곰팡이나 머릿니, 심장사상충 같은 벌레들이 계속 등장했다. 나는 아마도 공포 때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꿈틀대며 번식하는 것들에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소설에 끌어와 쓰는 것 같다고.
낯선 벌레 러브버그의 등장
익충이라곤 하지만 스트레스
앞으로 어떤 존재들과 만날까
익충이라곤 하지만 스트레스
앞으로 어떤 존재들과 만날까
하지만 나에게 공포와 혐오를 가져오는 그 생명체들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모기와 파리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세계에 있었고, 사십여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한해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겪었다. 모기와 파리가 아무리 질병 매개 곤충으로 분류된다 한들 그것들은 내 여름 일상 안에 들어와 나를 좀 괴롭히다 계절이 바뀌면 잦아들 뿐이다. 매미, 지네, 벌, 쥐, 나방, 빈대, 개미, 굼벵이,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보는 순간 아 그 벌레, 하고 알 수 있는 숱한 벌레들.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접해온 여러 매체를 통해 나는 그것들에 대한 적지 않은 정보를 갖고 있다. 징그럽고 멀리하고 싶을지언정 그것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내게 익숙한, 내 인식 범위 안에 있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근래에 예외가 생겼다. 사는 동안 어디에서도 보거나 듣지 못했던, 완전히 낯선 대상인 채로 내 일상 안으로 빠르게 들어와 버린 벌레가 생긴 것이다. 바로 러브버그다.
2년 전 러브버그가 처음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 폭염 재난 상황을 소설로 쓰고 있던 나는 이 벌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북한산 바위를 뒤덮은 벌레떼는 기후 재앙의 징조로 여겨지기에 충분했고 나는 꿈에 나올까 겁나는 채로도 러브버그의 사진을 계속 검색해 들여다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러브버그는 내게 풍문 속의 벌레였다. 올여름, 그 벌레가 내 집안으로 줄지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와 지하철과 내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이 낯선 개체를 내 세계의 어디쯤 위치시켜야 하는지 대혼란에 빠졌다.
‘러브버그, 사랑스럽진 않아도 해충은 아니에요.’
러브버그가 동네를 뒤덮었던 지난달 말,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시 안내문이 올라왔다. 다른 시 안내문엔 귀여운 캐릭터로 그려진 러브버그 한 쌍이 꼬리에 하트를 매달고 이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내 머리는 러브버그가 익충이라는 그 정보를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머리를 제외한 모든 감각은 연원이 아주 오래된 벌레 공포증과 혐오증에 내내 붙들려 있었다.
2024년 현재, 사람들은 이 낯선 익충한테 익숙한 해충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 매년 더 많은 곳에서 러브버그가 나타나고 토착화될 것이 예견된 만큼 십년 후쯤엔 거실에 모기가 들어오는 것과 러브버그가 들어오는 것이 큰 차이 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러브버그가 이상기후와 함께 나타났듯 그리 머지않은 시일, 우리는 우리 몸이 일생동안 저장해온 정보를 교란하는 뜻밖의 미기록종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에 출현하고 있는 이 비인간 타자들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스럽진 않아도. 사랑스럽진 않아서. 사랑스럽진 않지만. 러브버그가 가져온 이 문장들을 어떻게 완성하느냐에 따라 그 시작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최은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