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
화재로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봤다면 그 과정을 잘 살펴서 다음에는 절대로 유사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마땅하다. 그래야 문명사회라 할 수 있다. 화재는 A, B, C, D, K급 화재로 나눈다. 오랜 과거에 일반적인 A급 화재는 대응 방법이 물로 충분했다.
화성 공장 화재로 23명 사망 참사
D급 화재 소화기 법 규정도 없어
방재 선진국처럼 속히 의무화를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인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독자 제공
우리가 흔히 보는 빨간색 소화기는 이 세 가지(A, B, C) 화재를 모두 효과적으로 끌 수 있는 분말 약제 소화기다. 분말의 주성분은 소화성능이 뛰어나서 다기능 소화 약제라고도 부른다. 2017년에는 쓰는 곳이 많아져 위험 총량이 커진 식용유 화재(K급 화재) 진화용 소화기에 형식승인 등을 관련 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반응성이 워낙 크고 ‘열 폭주(Thermal Runaway)’를 일으키는 금속 화재(D급 화재)에는 소용이 없다. 이번에 발생한 리튬 1차전지 화재를 포함한 금속화재는 아직 제도권 밖이다. 사업주가 비치하지 않아도 관련 법이 없으니 처벌할 수도 없다.
대구 서구 가드케이 대구공장에서 업체 직원이 리튬 배터리 화재 전용 소화 장치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화재 참사를 겪기 전에 식용유 화재를 제도권으로 제때에 잘 흡수했다고 자화자찬한다면 이번에 리튬 1차전지 화재로 큰 인명 피해를 봤으니 D급 화재 대책 도입이 늦어졌다는 자책도 가능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D급 화재 대책을 제도권으로 흡수해 소화 설비를 양산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리튬(원소기소 Li)은 가장 가벼운 금속원소인 데다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물과 습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H2O)과 반응하면 수산기(OH)를 갖고 수소(H)를 내뿜는다. 이 수산화리튬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수소는 폭발적으로 연소한다.
가벼운 질량에 많은 전기에너지를 담기 때문에 가장 높은 전기밀도를 갖는 것은 문명의 이기 측면이다. 반면 폭발적인 반응성 때문에 열 폭주를 일으키는 것은 문명을 위협하는 흉기 측면이다. 사업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특성상 과학적 성질 중 이로움을 적극 활용하는 반면 그에 따르는 위협은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27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다문화공원에 설치된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의 모습. 전국에서 다문화 인구가 가장 많은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마련된 이 분향소는 화성공장화재이주민공동대책위원회가 이날 오후 설치했다. 연합뉴스
공장 2층의 오르내리기 쉬운 곳에는 리튬 1차전지를 가득 쌓아뒀고, 그 화재로 가로막힌 막다른 공간은 수십명의 작업장이었다. 더는 미루지 말고 소방법·건축법·산업안전보건법을 손질해야 한다. 교훈을 눈앞에 두고도 변명만 늘어놓고 세월만 보낸다면 비극적 재난을 반복하겠다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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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