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화가
2024년 7월의 첫날, 책을 읽다가 잠시 졸다가 깨니 문득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지금 들으니 갑자기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다. 지금이 언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니나 시몬의 호소력 짙은 노래에 이어 라디오 진행자가 읽어주는 하루키의 문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백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아니 이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독재자들 전쟁으로 세상 위협
북한 오물 풍선의 악몽 펼쳐져
그래도 삶은 언제나 가치로워
북한 오물 풍선의 악몽 펼쳐져
그래도 삶은 언제나 가치로워
그림=황주리
하지만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를 화해란, 지구의 언어가 아닌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쓴 노트를 뒤적이다가 언젠가 내가 쓴 실감 나는 글을 발견했다.
“며칠 전 이상한 꿈을 꾸었다. 세상을 떠나고 없는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는 꿈이었다. 돌리면 빙빙 돌아가는 중국 음식점의 커다란 원형 식탁 앞에 다들 앉아있는데, 식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중에는 외할머니, 아버지, 동생, 이모부,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 몇 년 전 세상 떠난 초등학교 동창 등 한 스무 명쯤이 둘러앉아 있었고, 꿈에도 그리던 애견 베티가 생전처럼 발치에 앉아있었다. 내가 어느새 환갑이라는 사실은 꿈속에서 더 실감이 났다. 일찍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늙지 않은 사람들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음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고, 아무도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손님 중에는 살아있는 내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아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 뿐, 산 자와 죽은 자는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죽음을 이미 경험한 분들에게 저세상에 관해 묻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분들이 매 순간 깜짝 놀라게 달라지는 이승을 더 궁금해할 것만 같았던 건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화가 이만익 선생님이 축사를 해주셨는데 내용은 대충 이랬다. ‘삶은 시간 예술이다. 지나가는 매 순간을 색칠해라. 정성껏 온 마음으로.’ 깨 보니 아무도 없었다. 정말 며칠 뒤면 내 나이 환갑이다.”
이 글을 쓴 뒤로 7년이 또 지났다. 꿈이다. 세월이 빨리 가버린 것처럼 모진 꿈이 있을까? 저 먼 별까지 맨발로 걸어가는 빈센트 반 고흐의 고독한 꿈을 떠올린다. 고흐가 머물렀던 정신병원 병실의 벽에는 “나는 제정신이다”라고 씌어있었다 한다. 앞서가는 정신은 늘 제정신이다. 제정신이 아닌 건 이 시대에도 전쟁으로 세상을 위협하는 독재자들이다.
문득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 제목이 생각난다. 맛있는 음식 풍선은 아니라 해도 오물 풍선은 심하게 진부하다. 결혼할 때 하얀 드레스를 입는 것도 반동으로 금지되며, 청소년들이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들키면 총살당하는 나라, 그곳이 가장 가까운 형제 나라라니, 그야말로 지독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문득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런 말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삶은 언제나 살 가치가 있다. 터무니없을지라도 축제에 초대받은 듯 살아라.”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