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BBC]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권혁인(38) 작가가 영어로 집필한 BBC 라디오극 ‘스테디 아이즈(Steady Eyes)’의 내용 일부다. 서울에 사는 모녀 3대의 갈등을 통해 한국의 아픈 역사가 개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과 함께 모성의 부재, 정서적 대물림 등의 주제를 탐구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할머니부터 BTS의 팬인 손녀까지 3대의 삶을 담은 권혁인 작가의 ‘스테디 아이즈’는 “독창적이고 대담하다”는 평을 받았다. 강정현 기자
최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권 작가는 “영화 분야에서 일하는 꿈을 갖고 지난 10여 년간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글을 써왔다. 2015년부터 꾸준히 같은 공모전에 출품해 오다가 8년 만에 수상하게 됐다. 한류의 세계적인 현상이 내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다양한 언어로 작품을 쓰는 이유는 “언어마다 표현 방식이 달라 재미있어서”란다. 그는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와 중국 후단대학교에서 글로벌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권 작가는 “유학 시절부터 서양 미디어가 유색 인종을 묘사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에 더욱 몰두한 것 같다. 여러 문화권을 아우르는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 ‘스테디 아이즈’는 어떤 아이디어로 시작한 작품인가.
- “‘전쟁을 겪은 트라우마는 삼대까지 남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연구해 보고 싶었다. 집필 당시 읽었던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전쟁통에서 버텨 살아남은 할머니,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엄마가 도망치듯 택한 결혼에서 태어난 딸, 그리고 그 딸도 자존감 있게 살진 못하고 있다. 지위·명예·부 등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서울에서 번아웃을 겪으며 힘들어 한다.”
- 작품에선 딸이 외계인에게 납치당하며 끝나는데, 그 뒤엔 어떻게 됐을까.
- “지구엔 60세 이상의 사람만 남는다.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고 고령화되는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 디스토피아 세상에선 어쩌면 외계인을 따라가는 것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는 길일지도 모른다.”
- 앞으로의 꿈은.
- “영어로 첫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작품들을 잘 쌓아서 전업 작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벌이가 부족해 과학 학술지 에디터 일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