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후 3시30분 기준 엔화값은 달러당 160.35엔에 거래됐다. 전날 밤 달러당 160엔 선을 뚫더니 160.81엔까지 곤두박질쳤다. 1986년 12월 이후 달러 대비 엔화값이 가장 낮다.
수퍼달러와 수퍼엔저 협공에 아시아 통화가치도 맥을 못춘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를 비롯해 중국 위안, 인도 루피 등 아시아 9개 통화가치를 반영한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89.98로 2022년 11월 3일(89.09) 이후 1년7개월 만에 가장 낮다. 원화값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 초반 달러당 1394원으로 밀렸다가 달러 차익 실현 움직임에 전날보다 2.9원 오른(환율 하락) 1385.8원에 장을 마감했다. 연초와 비교하면 종가 기준으로 반년 새 6.6% 하락했다.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추락하는 건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별화가 원인이다. 미국은 ‘탄탄한 경제’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면서 금리가 1년째 5%대다. 일본은 지난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났지만, 추가 긴축엔 신중하다. 자금줄을 과도하게 죄었다간 어렵게 살려낸 경기 회복의 불씨(성장률)가 꺼질 수 있어서다.
또 일본 정부도 미국의 환율조작국(환율심층대상국) 지정 우려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도 쉽지 않다. 미국 재무부는 이달 환율보고서에 일본을 환율 관찰대상국 목록에 추가했다.
몸집을 키우는 수퍼엔저와 수퍼달러에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수퍼엔저가 미국 국채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을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씨는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다. WSJ에 따르면 글로벌 국채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26일(현지시간) 연 4.334%로 전 거래일 대비 0.082%포인트 올랐다.
원화값이 다시 달러당 1400원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국내 경제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수입 물가 상승은 국내 소비자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 연초 이후 누적된 고환율(원화 대비 달러 강세)은 건설자재 등 원자재를 수입하는 중견·중소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추가적으로 엔화 약세가 나타나면 원화값은 달러당 1400원에 안착할 수 있다”며 “특히 일본 정부가 공격적인 긴축 조치에 나서면 (엔화를 빌려 투자한)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