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과 ‘신(新) 한·일 어업협정’ 체결 당시 주한 일본대사를 지낸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5) 전 대사는 지난 11일 도쿄에서 가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복잡다단했던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여러 차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면서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가 지난 11일 일본 도쿄 일본재단 패럴림픽 연구회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한·일 어업협정은 1998년 1월 일본 측이 파기했다. 같은 해 3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당시 일본 외무상이 방한해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4월부터 양국 간 협상이 재개됐었다. 이후 오부치 외상은 같은 해 7월 총리에 올라 김 대통령과 10월 역사적인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오구라 전 대사는 저서에서 “(오부치 외상의) 방한은 일본이 협정 교섭을 파기하면서 냉각된 일·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 측이 마중물을 부은 것이었다”면서 “방한 성공의 열쇠는 양국 외무상이 노련한 정치인이었고, 보이지 않게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오부치 외상의 카운터파트는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김대중 정부의 첫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은 박정수 전 의원이었다.
당시 방한을 계기로 한·일 관계는 개선의 길로 접어들었고, 같은 해 4월 정상회담에서 한·일 공동선언 작성을 위한 준비에 합의했다. 정치적 결단과 물밑 사전 교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인 셈이다.
오구라 전 대사는 대륙붕 공동개발협정과 관련해선 “어업협정 때도 그랬지만, 일·한이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일·한 양국 국민에 대해서도 제3국에 대해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인 이익이 있다면 협정 연장 등을 통해 양국이 함께 개발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경제적인 의미가 어디까지 있는지가 하나의 포인트”라고 짚었다.
1999년 1월 22일 당시 오구라 가즈오 주한 일본대사(왼쪽)가 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과 정부 세종로청사 조약체결실에서 '신 한·일 어업협정' 비준서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내년 수교 60주년을 맞아 ‘제2의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방안에 대해선 “오부치-김대중 선언을 뛰어넘는 높은 차원의 일·한 관계를 구축하겠다면 의미가 있다”며 “일·한 양국 간에 그치지 않고, 저출산 고령화나 지구 환경 문제 등에 함께 대처하는 ‘세계 속에서의 일·한 관계’를 구축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구라 가즈오
1938년생. 도쿄대 법학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졸업. 1962년 일본 외무성 입성 후 문화교류부장, 경제국장, 주베트남 대사, 외무심의관(경제 담당), 주한국 대사, 주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 현재 일본재단 패럴림픽 연구회 대표, 국제교류기금 고문, 전국농업회의소 이사, 아오야마가쿠인대 특별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