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금리를 연 4.5%에서 4.25%로 내린 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물가 하락이 충분히 진행돼 금리를 인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은 2022년 10월 전년 동월 대비(이하 동일) 10.6%에 달했다가 지난해 10월부터 2%대에 머물고 있다. 하루 전인 5일 금리를 5%에서 0.25%포인트 인하한 캐나다은행(BOC)의 티프 맥클렘 캐나다은행 총재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완화돼 더는 긴축을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농산물 등 생활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농산물 물가는 19% 상승했다. 특히 작황 부진으로 공급이 크게 줄어든 사과는 80% 넘게 급등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이상기후 등이 먹거리 물가를 위협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지난해 한국은 개화기와 생육기에 폭우와 이상저온이 찾아오면서 특히 과일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 부진은 앞으로도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품종 개량 등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식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대표적 외식 메뉴인 돼지고기 삼겹살 1인분의 평균 가격은 지난달 서울 기준으로 2만원을 처음 돌파했다. 김밥과 자장면·비빔밥·김치찌개백반 등 다른 외식 품목의 가격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올해는 봄철 가뭄이 들지 않아 작황 부진이 지난해보다는 덜했다는 점이다. 또 정부의 선제적 비축 및 할당관세 적용 확대 등으로 농산물 물가 상승 폭은 전년에 비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름철 폭염·폭우 등의 기상이변은 불확실성 요인으로 남아있다. 기상청 전망에 따르면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 덥고 비도 많이 올 가능성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과거 추세 대비 10도 오르거나 내릴 경우 소비자물가는 단기적으로 0.04%포인트 상승하고, 강수량이 과거 추세 대비 100㎜ 변화하면 물가가 0.07%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름철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제유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휴가철 휘발유 수요,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유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86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간 동결 기조가 이어졌던 전기와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도 하반기에는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중동 분쟁 장기화, 미 대선 등도 하반기 변수 중 하나다. 특히 이들 변수는 국내 정책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0~2023년 한국의 인플레이션 중 글로벌 요인의 비중은 55%에 달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 대선과 미·중 갈등, 전쟁 리스크 등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서 달러 강세는 하반기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내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유가·강달러 현상은 상당한 변수로 미·중 긴장감이 커지거나 중동 전쟁 등이 확전되면, 2차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를 인상하는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